[논현로] ‘근로시간 유연화’ 절실한 이유

입력 2023-12-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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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 부추기는 악법” 사실과 달라
노동계·좌파언론 반대는 시대착오
노사합의 따른 유연화가 세계흐름

윤석열 정부의 핵심 개혁 과제인 근로시간 개편 작업이 거의 중단된 상태다. 주 52시간제 유연화를 “과로를 부추기는 시대착오적 악법”으로 낙인찍은 좌파 언론과 노동계의 공세에 밀린 때문이다. 올봄 정부는 근로시간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주당 최대 65시간을 넘어서 일하는 기업들은 거의 없을 것으로 관측했다. 그런데도 좌파언론과 노동계가 ‘주 최대 69시간 근무’라는 프레임을 씌워 개편안을 공격하면서 개혁이 동력을 잃었다.

노동계와 좌파 언론들이 윤정부의 근로시간개혁에 어깃장을 놓는 것은 근로자들의 건강을 걱정해서라기보다는 다른 의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주52시간 근로제를 추진했던 2012년 이전 이들이 어떤 자세를 취했는지를 보면 그 진정성의 실태를 읽을 수 있다. 당시 정부는 일년 내내 68시간 근로가 가능한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무려 16시간이나 단축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노동계나 좌파언론의 요구가 있어서가 아니고 고용창출 차원에서 추진된 정책이다.

지금 주 52시간제 유연화가 과로를 부추기는 악법처럼 왜곡 선동하는 노동단체와 좌파 언론들이지만 당시 장시간 근로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넘쳐났는데도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닫고 있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노사정 3자가 연평균 2100시간대의 근로시간을 OECD 평균인 1800시간대까지 낮추자는 선언적 약속만 했을 뿐이다. 이러다보니 지금 주52시간제 유연화가 건강을 해친다는 주장에 대한 진정성이 의심받고 있다

주 52시간제는 재계 반발로 계속 미뤄지다 문재인 정부에서 입법화돼 2018년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때 주당 근로시간 한도가 대폭 감소돼 근로자들의 작업환경은 개선됐지만 기업들의 생산활동은 크게 위축되었다. 이 때문에 근로시간 유연화에 대한 기업들의 요구가 늘어났지만 노동단체와 좌파 언론들은 기업들의 사정은 외면한 채 근로자들의 건강권 타령만 외쳐댔다. 주당 근로시간 한도가 급감했고 평균 근로시간도 많이 감소했지만 이들의 건강 염려증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마치 ‘지체된 정의’에 참회라도 하듯이 정부 정책 내용을 왜곡하면서까지 노동자의 건강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듯한 모습이다. 주 68시간 근무를 허용할 때는 조용하다가 근로시간이 대폭 줄어든 지금에 와서 “과로사가 어쩌구…, 악법이 저쩌구…” 하면서 근로자들의 건강을 챙기는 모습을 보이니 이상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러다보니 이들의 반대가 윤 정부 노동개혁에 타격을 가하려는 암수(暗數)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일본의 유연한 근로시간정책을 보면 우리나라 노동단체와 좌파 언론들의 행태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 느낄수 있다. 일본 근로자들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021년 기준 1607시간으로 한국 1915시간보다 300시간가량 짧다. 그럼에도 연장근로한도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길게 허용하고 있다. 일본 노동기준법에는 연장근로 한도가 월 45시간, 연 360시간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노사가 합의할 경우 월 100시간, 연 720시간까지 연장할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업의 생산활동에 필요한 근로시간을 노사의 자율결정에 맡겨 놓은 것이다.

우리나라 근로시간 개편안의 연장근로 한도는 일본보다 훨씬 적은 월 52시간, 연 440시간이지만 노동계와 좌파언론들은 과로를 부추기는 악법으로 몰아가고 있다. 아마도 일본의 근로시간과 비슷한 방안을 우리 정부가 제시했다면 좌파언론과 노동계의 선동으로 온 나라가 큰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노동정책이 이념과 진영논리에 휘둘리는 상황에서 엊그제 주 52시간만 넘지 않으면 야근과 밤샘 근무를 반복해도 위법하지 않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것은 여간 다행이 아니다. 이 판결은 주 52시간근무제에 대한 경직된 해석을 바로 잡았다는 데 의미가 있고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작업에도 힘을 실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야간근로가 필요한 게임개발업체, 스타트업, 연구 업종 등에선 연장근로로 인한 불확실성이 줄어들어 인력운영에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

기술혁명의 진전과 재택근무 확산 등으로 주 52시간제의 유연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일본에서처럼 노사 합의를 전제로 기업 특성에 맞게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게 한다면 근로자의 건강권을 지키면서 기업의 탄력적 생산활동도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윤석열 정부는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근로시간 유연화를 신속하게 입법화함으로써 산업 현장에 혼선이 빚어지지 않도록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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