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문명은 정밀한 시계 위에 작동한다. 차량 내비게이션은 현 위치를 찍기 위해 위성 신호를 받는데 위성과 지구의 시계가 동기화되어야 한다. 별들이 충돌하는 중력파를 잡으려 여러 지역에 설치된 망원경들도 동기화된다. 두 시계의 동기화는 시계 자체가 정밀해야 가능하다.
시계 개선이 가능한 이유는 시계가 인간의 발명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도 인간의 발명일까? 남녀 간의 끌림에서 사랑이란 어휘를 조어했듯이 시간도 발명품이다. 선현들은 인조물인 시간을 제대로 인식 못해 시간의 방향성과 시간 여행에 신비감을 부여했다.
인류는 세계 변화를 측정하려 시간을 도입했다. 창조 전 암흑 상태에서는 시간이라는 어휘도 없었다. 인간은 진동추가 움직일 때마다 하나씩 시간이 증가하도록 약속했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지 않는 현상은 발명 당시의 약속이니 신비롭게 볼 필요가 없다. 원이 둥글다고 놀라지 않는 이유와 동일하다.인간은 시간에 1초, 1분, 1시간, 1년 등 단위를 부여했고 해시계도 발명했다.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 서로 소통하려 세계 기준시도 정했다. 시계를 태양의 궤도와 일치시키기 위해 윤초도 도입했다. 사람들은 인위적 시계 조정의 의미를 이해하기 때문에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시계에서 일어난 조정이 시간에서도 3차례 일어날 뻔했다. 17세기 뉴턴은 시간에는 방향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간을 매개로 한 운동방정식을 도입하여 추의 진동과 지구의 공전 궤도를 정확히 계산해 냈다. 이들 운동은 반복되므로 뉴턴 시간은 방향성이 없다. 뉴턴 역학에서 시간의 비방향성은 발명 당시 약속된 시간의 방향성을 부정한다.
과학자들은 이 충돌을 해소하기 위해 200년 동안 씨름했다. 물에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잉크는 퍼져나가지만 펴진 잉크가 다시 한 점으로 모이지는 않는다. 푸앙카레, 볼츠만 등이 잉크의 비가역 운동을 파고들어 놀라운 규칙을 얻었다. 해와 지구처럼 두 물체의 운동은 가역적이지만 천문학적 입자들의 운동은 비가역적이다.
단일 입자에도 뉴턴 방정식이 적용되고 여러 입자에도 뉴턴 방정식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러나 방정식의 해는 사뭇 다르다. 가역성에서 비가역성으로 전환되는 이유는 통계처리 즉 군집효과 때문이다. 반듯한 아버지가 예비군에 소속되면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천문학적 입자로 이뤄졌고 따라서 처음 상태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이제 시간의 비회귀성과 세계 변화의 비회귀성은 일치되었다. 푸앙카레와 볼츠만의 발견은 원시 인류의 비가역적 시간 개념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의미이다.
시간의 3번째 조정 위기는 아인슈타인의 탓이다. 그는 세상에 일어나는 변화의 순서는 관점이 바뀌어도 바뀔 수가 없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버스를 탄 승객이나 현장의 구경꾼에게도 화재의 전개 순서는 동일하다. 여기에 빛의 속도는 일정하다는 원칙을 더하면 상대성 이론이 탄생한다. 사람마다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상대성 이론 말이다. 빨리 뛰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느리게 가고 강한 중력을 받는 사람에게도 시간은 천천히 간다. 우주여행을 다녀온 쌍둥이는 지구에 남은 쌍둥이보다 젊다.
우주여행으로 인한 노화 지연은 시간 방향성에 다시 흠집을 냈다. 우주여행뿐만 아니라 보약이나 유전자 변형으로도 회춘할 수 있다. 작가들은 타임머신을 상상했고 시간의 위기가 왔다.
이후 100년 동안 찾았던 타임머신은 허구임이 밝혀지고 있다. 한 개인은 회춘하지만 그를 둘러싼 세계는 회춘하지 않으므로 세계 기준시는 역주행하지 않는다. 노화 지연도 과거 여행은 아니다. 자손이 과거로 시간여행하여 조상을 살해하면 인과관계를 위배하므로 과거여행은 불가능한 일이다.
시간이 상대성 이론으로 위협을 받지만 시간의 비가역성은 여전히 견고하다. 시간은 시계의 윤초 같은 조정이 필요 없다. 지금은 시간을 정비할 시간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