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유럽중앙은행(ECB)의 행보는 매우 분주하다. 지난 ECB통화정책회의에서 6월 기준금리 인하를 강하게 시사했고, ECB의 주요 위원들 역시 언론에서 6월 기준금리 인하를 언급하고 있다. 유럽 역시 인플레이션 지표는 2%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성장’ 측면에서 미국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성장은 매우 강한 반면, 유로존의 성장은 부진을 거듭하고 있다. 물가 안정이 다소 덜 되었더라도 성장 부진에서 벗어나고자 미국과는 달리 기준금리 인하 카드를 쓸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최근 스위스와 스웨덴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했는데, 선진국 중에서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하한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유럽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가능성을 더욱 높여준다.
미국은 기준금리 인하를 늦추면서 고금리를 유지하는데 유로존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경우, 주요국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분기(Divergence)가 나타나게 된다. 미국과 유로존의 금리차가 확대되는데, 이는 고금리를 유지하는 달러 강세와 그 반대편의 유로화 약세를 의미하게 된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인데, 인플레이션 압력이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인상 속도를 시장의 예상보다 천천히 가져가려 하고 있다. 이 경우 예상외의 느린 금리 인상으로 인해 미국과의 금리차가 계속해서 높게 유지되며 엔화 약세를 자극하게 된다. 결국 선진국 통화정책의 ‘분기’는 달러 강세와 엔, 유로 등의 선진국 통화 약세의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경제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신흥국은 대부분 초기 자본의 부족으로 인해 해외에서 선진국 통화로 된 차관을 들여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신흥국에는 달러 표시 부채가 많은 편인데, 달러화가 추가로 강세를 보이게 되면 달러 표시 부채의 실질 상환 부담이 크게 높아지게 된다. 결국 달러 강세는 신흥국의 부채 부담 가중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미국이 고금리를 유지하고 있기에 신흥국은 내수 경기가 부진하더라도 기준금리 인하 카드를 쓰기가 매우 어렵다. 선진국과는 달리 미국과의 금리차 확대가 신흥국 통화 약세를 촉발하면서 수입 물가를 높일 수 있는데, 이는 신흥국 내부의 인플레이션 압력을 강화하게 된다. 최근 루피아 약세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에 맞서 기준금리를 전격 인상한 인도네시아의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달러 강세가 신흥국에게 꼭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신흥국 통화 약세는 수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인데, 이는 강달러에도 불구하고 신흥국의 수출 성장을 자극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던 미국과 유럽의 분기로 인한 유로화를 비롯한 선진국 통화의 약세는 달러 강세로 인한 신흥국 수출 개선이라는 장점을 희석시켜 버린다. 신흥국 통화가 약세를 보이더라도 엔, 유로 등의 선진국 통화가 함께 약세를 나타낸다면 통화 약세의 장점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부채 부담의 확대와 함께 수출 실적 역시 치열한 환율 전쟁으로 인한 경쟁으로 개선되기 어렵다면 신흥국 경제의 회복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고금리에도 불구, 예상외로 탄탄한 미국의 성장과 여전히 끈적끈적한 미국의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미국 기준금리 인하가 늦춰지고 있다. 단순히 미국의 고금리뿐 아니라 다른 선진국의 통화 정책 ‘분기’가 만들어낼 부작용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