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이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정책이 바뀌고, 좌편향과 우편향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에 대한 인식과 문제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국가 전략이 부재하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 정책이 일관되게 이어지기 힘들다. 에너지 정책이나 소득주도성장, 징벌적 부동산정책 등 시장을 거스르는 일부 정책의 정상화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나머지는 정책의 부정이 아닌 실행의 조정이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라는 일관된 정책을 추진해왔기 때문이다. 장기집권과 맞물려 정책에 대한 논란을 줄이고 실행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장기집권에 따른 권력의 강압이 시장의 조정기능을 왜곡시키고, 국민의 의지에 반하는 정책을 밀어붙이다 보니 결국 장기집권의 종식과 함께 장기계획도 표류하게 되었다.
노무현 정부 때 장기계획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비전 2030’을 수립하였으나, 정권 말기에 수립되어 실행이 담보될 수 없었다. 결국 5년 단임정부에서 장기계획을 세우는 것이 무의미한 현실이 되어 20여 년 가까이 우리나라는 장기 비전, 전략 없이 갈팡질팡하는 국가가 되었다. 이로 인해 국가의 대내외적인 대응력과 경쟁력이 저하되고 있다.
다른 측면에서 장기계획이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높은 현대 국가 및 글로벌 상황에서, 전체주의 국가가 아니고는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복잡하게 권력을 균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장기계획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사실 국제적으로 한때 유행하던 장기계획의 시대는 지나갔다. 이는 일극체제가 지속되면서 변동성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미중갈등으로 대표되는 양극 또는 다극체제로의 전환이 진행되고, 글로벌 공급망에서부터 기술 격변까지 여러 상황이 복합적으로 벌어지면서 여러 나라들이 다시 장기계획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변동기에 국가가 외부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자국에 유리한 국면 조성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핀란드, 캐나다, 독일 등의 많은 선진국들이 전략적 미래전망에 대한 작업을 통하여 미래 이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내외의 중장기 트렌드를 전망하여 이에 따른 도전 과제를 설정하고,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러 옵션을 제시하는 보고서를 주기적으로 발행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안목을 높이고, 공통된 인식의 틀을 갖추기 위한 전략적 미래전망은 정부 부처 단위의 전략 개발에 밑바탕이 되고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국회와 정부가 공동으로 작업을 하고 있고, 여러 부처 및 이해관계자, 미래연구 싱크탱크가 참여하는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임제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전략적 미래전망, 장기전략 수립은 정부가 아닌 국회 주도로 갈 수밖에 없다. 여야가 함께 있는 국회에서만이 10~30년 미래전망과 비전, 기본전략에 대한 합의가 가능하다. 10~30년 후에 누가 집권할 것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현재 여야의 입장에서 유리한 것보다는 장기적으로 국민에게 유리한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집권한 정부는 여야가 합의된 장기 기본전략에 기반하여 5년 또는 8년의 실행 계획(전략)에 자신의 정책을 반영하면 된다.
국회가 새롭게 구성되어 시작되었다. 하지만 국회가 과거 이슈에 매몰되어 국가 미래전략 수립에 나서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국회가 정쟁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 국회 상임위로 미래위원회를 만들고 국회미래연구원을 싱크탱크로 활용하면 된다. 전략적 미래전망 작업부터 시작하여 점차적으로 국가 미래비전, 기본전략 수립 작업으로 역할을 확대해 나가면 된다.
미래에 대한 지도와 나침반 없이 격동의 시대에 국가의 운명을 개척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