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공짜점심’에는 늘 대가가 따른다

입력 2024-06-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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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왜 투자를 받으려고 하세요?” 투자 유치에 대한 조언을 들으러 온 후배 창업자들에게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다. “직원들 월급도 줘야 하고, 시설 자금 및 마케팅 비용도 필요해서요.” 부정할 수 없는 정답이다. 사업에는 자금이 필요하다. 다만, 자금 조달에 꼭 회사의 신주를 발행하여 투자자에게 배정하는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닌데, 왜 꼭 투자 유치여야 할까?

대출은 언젠가 갚아야 할 돈이니 부담이다. 특히 요즘 같은 고금리 시대에 상환 의무가 없는 투자 유치는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만기일 없이 사업에 투여할 수 있는 돈이 생기니 행복하다.

초기투자자, 100배 성장하는 유니콘 기대

그런데 창업자 입장에서 투자 유치는 항상 매력적이기만 한 걸까? 자영업자들이 사업 자금 조달 방법으로 투자 유치가 아닌 사업자 대출을 이용하는 건 단순히 투자 유치가 어려워서일까? 스타트업 창업자라면 투자 유치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이 질문을 해보는 것이 좋다. 당장은 상환할 의무도 이자도 없는 돈이 매력적으로 보이겠지만, 공짜 점심에는 항상 치러야 할 대가가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에 투자한 벤처캐피털의 기대 수익률은 얼마일까? 벤처투자조합에 출자하는 LP 입장에서 연간 수익률이 15%라면 지난 10년간 배당을 포함한 총주주수익률이 연평균 5%에 불과한 국내 증시 수익률에 비해 월등한 성과를 올렸다고 할 수 있다. 연 15%의 수익률은 10년 만기 펀드의 경우 1억 원의 투자금을 4억 원으로 회수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개별 스타트업도 10년에 딱 4배만 성장하면 충분할까?

벤처캐피털의 입장은 다르다. 100개 회사에 투자했을 때 100개 회사 모두 망하지 않고 잘 성장해 주면 좋겠지만, 불확실성이 큰 스타트업 사업의 특성상 투자한 회사의 90%는 망한다. 벤처캐피털이 멀티플 4배를 하려면, 살아 남은 10개 회사는 4배가 아닌 40배를 성장해야 한다. 10개 회사가 골고루 40배 성장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며, 초기 투자자는 투자 포트폴리오에 100배 이상 성장하는 유니콘이 반드시 한두 개는 포함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사업은 좋은데 시장 규모가 너무 작은 것 같다”가 투자 거절의 단골 사유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례로, 회사가 목표로 하는 시장이 연간 100억 원 규모라면 이 시장의 독점 사업자가 되더라도 기대할 수 있는 매출은 최대 100억 원이다. 여기에 사업적 해자까지 있어서 높은 영업 이익률을 기록했다고 하자. 사업은 분명히 성공했지만, 성장의 한계로 높은 투자 수익률을 기대하기 힘들게 된다.

투자 유치를 진행하기 전에 이러한 투자자의 기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벤처 투자 또한 만기가 있고 기대 수익률이 있다. 앞서 살펴본 벤처 투자의 특성으로 인해 벤처투자자의 기대 수익률은 대출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높다. 10년 만기 펀드가 100배 수익을 주려면 연평균 58.5%의 수익률을 기록해야 한다. 바꿔 말해, 이 정도로 빠르게 사업을 성장시킬 자신이 없다면 투자 유치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스타트업이 가장 위험한 순간은 진입한 시장의 크기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이다. 이미 높은 기업 가치로 상당한 투자금을 받았는데, 성장이 둔화하면 기업 가치를 정당화하기 힘들게 된다.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마케팅 비용 지출을 늘리지만, 마케팅이 시장 규모 자체를 키울 수는 없다. 시장 점유율이 높아질수록 신규 고객 획득 비용만 점점 높아지게 된다. 결국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시장에 새로운 서비스와 제품을 출시해야 하는데 이 과정은 스타트업을 새로 창업하는 것과 다름없는 시행착오와 고통이 수반된다.

높은 성장성으로 기업가치 이해시켜야

최근 고금리에 후속 투자 유치가 어려워지면서 많은 스타트업들이 구조 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일부 기업은 공격적인 인력 감축과 체질 개선을 통해 흑자 전환을 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물론 축하할 소식이지만, 애당초 적자를 감수하며 공격적인 성장을 감행했던 이유는 역설적으로 투자 유치에 있을 수도 있다. 적당한 시장에서 적당한 이익을 낼 수 있었던 사업이 벤처 투자자의 높은 기대와 맞물려 무리한 사업 계획의 수립과 실행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흑자 전환의 대가가 낮은 성장성이라면 이미 높은 성장성을 전제로 매겨진 높은 기업 가치를 정당화하기는 어렵게 된다. 어려운 시기가 지나가고 다시 봄이 오면, 창업자들은 또 한 번 성장 요구를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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