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진퇴양난 빠진 일본의 엔 약세

입력 2024-07-08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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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건영 신한은행 WM추진부 팀장

최근 외환 시장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 이례적인 엔 약세이다.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60엔을 넘어서면서 지난 30여 년 새 가장 낮은 엔화 가치를 형성하고 있고, 원화 기준으로도 엔화 환율이 100엔당 850원 수준으로 하락하면서 엔저 기조가 쉽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엔화 약세는 일본의 수출에 유리하다는 장점은 있지만, 과도한 엔 약세는 되레 부담을 줄 수 있다. 엔 약세는 수입 제품의 가격을 높이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을 심화시키게 된다. 물가 상승이 가속화되었을 때 일본의 소비는 냉각될 수밖에 없는데 실제 일본의 내수 성장 지표가 눈에 띄게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서민 경제와 맞닿아 있는 내수 경기의 냉각은 일본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외환시장 개입·금리 인상 모두 신중론 커

물가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이 지금과 같은 저금리를 유지하려 한다면 일본 내에서 저금리 예금을 해지하고 가격 상승 기대가 큰 상품으로 돈이 쏠리는 매점매석이 나타날 수 있는데, 이는 현재의 물가 상승세를 심화시켜 뒤늦게 이를 제어하기 위해 큰 폭의 금리 인상으로 대응해야 할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 이렇듯 과도한 엔화 약세에 실제 일본 당국과 중앙은행도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엔 약세를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세 가지 대안을 고려할 수 있다. 첫째는 외환시장 개입이다. 엔 약세와 달러 강세를 기대하면서 엔화를 팔아 달러를 사들이는 투기 세력을 직접적으로 견제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일본 당국이 보유한 외환보유액의 달러를 외환시장에 내다 팔게 되면 달러 공급이 일시적으로 크게 증가되는 바,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서 반대로 엔화 가치가 상승하게 된다. 엔 약세를 일시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외환 시장에 대한 특정 국가의 직접적인 개입이 되는 셈인데, 미국과 같은 주요국들은 이런 개입에 대해 상당히 불편한 기색을 드러낼 수 밖에 없다. 최근 발표된 미국의 환율 보고서에서 일본은 두 차례 연속으로 관찰 대상국으로 지목된 바 있다. 엔 약세를 막기 위해서는 과감한 외환시장 개입이 필요한데, 이를 계속해서 이어가기는 쉽지 않은 이유다.

두번째 방법으로 거론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일본의 금리 인상이다. 최근 엔화 약세는 지난 30년 새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버린 미국 금리와 여전히 전 세계 최저 수준에 가까운 일본의 금리가 큰 차이를 보이는 데 기인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일본은 자국의 금리를 빠르게 인상해서 미국과의 금리차를 좁힐 수 있는데, 일본 입장에서는 빠른 금리 인상 역시 상당한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

우선 일본의 국가 부채가 워낙 높은 수준이기에 금리 인상으로 인해 이자 부담이 증가하면 일본의 재정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 또한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는 해도 여전히 일본 경기에 대한 의구심이 높은 바, 제로 금리 혹은 마이너스 금리에 익숙한 일본 경제에 빠른 금리 인상이 가져다 줄 충격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가늠할 수 없다는 점 역시 두 번째 방법을 택하는 데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게 한다.

미국 금리인하는 일본의 통제 밖 변수

여기서 마지막 방법이 거론될 수 있는데, 바로 미국의 과감한 금리 인하가 그것이다. 일본이 부담스러운 금리 인상을 단행하지 않더라도 미국이 금리를 인하하게 되면 미국과 일본의 금리차는 좁혀질 수 있고, 이는 엔화의 일방적인 약세를 제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금리 인하는 일본 당국이 통제할 수 있는 변수가 아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이 자국의 물가 및 경제 상황 등을 감안해서 인하를 단행할 수 있는 옵션이기에 그 시기를 임의로 예단하기 쉽지 않다. 또한 미국 연준이 금리 인하에 나서더라도 인하의 속도가 과거보다 현저하게 느리다면 미국과 일본의 가시적인 금리 차이를 좁히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수 있고, 이는 엔 약세의 빠른 개선을 어렵게 한다.

엔 약세를 제어하는 방법은 있지만, 모든 방법이 나름의 부담 요인을 갖고 있다. 이 사이에서 최적의 선택을 해야 하기에 일본 정부 및 중앙은행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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