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퍼주기 포퓰리즘 일상이 되고
노력·과실 분리로 인센티브 말살돼
벌써 25년 전이다. 1997년 외환위기가 발발하기 몇 달 전 박사학위 지도교수를 서울에 모신 적이 있다. 경주를 가보고 싶다고 하고, 기차를 타고 창밖의 풍경을 통해 한국의 발전상을 보고 싶다고 해서 당시로서는 가장 빠른 새마을호를 예약했다. 그러나 창밖의 풍경은 1970~1980년대와 별반 다를 것이 없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내심 마음속으로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였다.
지금 고속열차를 타고 내다보는 창밖의 풍경은 그때와 너무나 다르다. 그때의 초라함은 어디 가고 미국이나 프랑스의 어느 지방에 온 것은 아닌지 착각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다시 한 번 그분을 모시고 경주 나들이를 하고 싶은 심정이 간절하다. 그보다 더 먼 50년쯤 전 무교동의 뒷골목, 초가집이나 다름없던 막걸리 주막을 회상하면서 가끔 나들이 가는 종로 거리를 걸으며 느끼는 것은 때로 무슨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랄까. 무슨 마법이 휩쓴 것처럼 변한 거리를 걸으면서 쉽게 착각하는 것은 이곳이 대한민국의 종로일 수 없다는 환상이다.
50년 전 아니 그보다 가까운 25년 전 대한민국과 지금의 이 나라가 왜 이렇게 다른 것일까? 대한민국의 풍경이 멀지도 않은 25년 전의 초라함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한 것을 설명해 보라고 한다면 독자들께서는 무엇을 말씀하시고 싶을까? 단 한마디로 말한다면 자본의 힘이 아닐까. 당연히 자본은 지금까지 이루어진 저축의 결과이고 그 저축을 잘 사용한 결과 이외에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근대사가 걸어온 모든 질곡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축적한 자본의 힘을 우리가 지금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바꾸어 말해 자본주의의 힘을 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와 무엇이 다를까? 역사적으로 왜 자본주의는 성공하고 사회주의는 실패한 것일까? 자본주의만이 바람직한 제도일까? 이런 의문들은 매우 근본적인 의문이지만 적어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성패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고 생각된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본성에 충실하고 사회주의는 이성에 기대기 때문이 아닐까.
경제학이 말하는 자본주의와 시장원리의 핵심은 인센티브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성공하기 위해서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근본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노력에 대해서는 크든 작든 대가가 따른다. 자본주의에서 그 대가의 향유는 개인을, 사회를, 경제를, 국가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읽는 독자들은 아마 대부분 이 무슨 당연하고도 멍청한 말이냐고 하실 것이다. 그러나 무슨 심오한 이론을 들이대는 것보다 스스로에게 득이 되는 것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에 기대는 이 단순한 원리가 자본주의가 성공하는 근본이라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사회주의는? 사회주의의 원리는 인간의 본성과는 거리가 멀다. 노력의 과실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만 한다는 당위를 강요하는 것이 사회주의의 근본원리이다. 사회주의는 노력과 그 과실을 분리시키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열심히 진력하는데도 그 결과는 다른 데로 간다면 왜 노력을 하겠는가. 그런 제도에서 열심히 노동하고 저축하고 거래하는 것은 평범한 개인에게는 헛된 것이다. 물론 그런 제도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이성적이고 이타적인 소수의 인사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경제발전을 이루고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다수의 보통 사람들이지 몇몇 이상주의자들이 아니다. 그러니 사회주의는 실패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사회주의를 향하여 열심히 진군하고 있다. 선거 몇 번 치르고 나니 사회주의 정서가 팽배하고 있다. 모든 국민에게 몇십만 원씩 나누어주자는 주장은 이제 일상사가 되었다. 여야 정당을 가릴 것이 없다. 국민의 환심을 사기 위해 못할 일이 없어 보인다. 그런 포퓰리즘의 뒷면에는 사회주의적 정서가 늘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사회주의 정서의 핵심은 노력과 과실의 분리이다. 인센티브의 말살이다. 대한민국은 서서히 그런 나라가 되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