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은 슈가·김호중이 했는데…분열된 팬덤의 정치학(?) [이슈크래커]

입력 2024-08-19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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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슈가(왼쪽), 김호중. (연합뉴스)
▲가수 슈가(왼쪽), 김호중. (연합뉴스)

"이야, 이 팬덤 행패 수준 상상 초월이네."

평론가도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최근 사회면을 연일 채우고 있는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 슈가의 '음주운전' 사건 때문인데요. 슈가의 이름을 온라인상에서 언급하기만 해도 몰려드는 일부 팬들의 사이버불링(온라인 집단 괴롭힘)을 꼬집은 겁니다.

BTS 팬덤 '아미'는 K팝 내 최대 팬덤으로 꼽힙니다. 그간 BTS가 펼쳐온 긍정적 영향력과 가치 있는 메시지에 기반해 많은 선행에 동참, 건강한 팬 문화를 만드는 데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았죠.

그러나 '광기의 사랑'(?)도 팬덤 규모에 비례했던 걸까요. 인신공격과 조롱 등 악플, 계정 해킹 및 폭파 시도, 신상 털기 등 각종 사이버불링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숱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슈가에게 비판의 글을 남긴 평론가부터 자숙과 탈퇴를 요구한 같은 팬까지, 공격의 대상도 다양합니다.

▲(출처=온라인 커뮤니티)
▲(출처=온라인 커뮤니티)

슈가 음주운전 적발에…"탈퇴해" vs "별일 아닌데 유난" 갈라진 팬덤

슈가는 6일 밤 11시 15분께 용산구 한남동 자택 인근에서 만취 상태로 전동 스쿠터를 몰다가 넘어진 채 경찰에 발견돼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입건됐습니다.

당시 경찰은 슈가가 BTS 멤버임을 알아보지 못했고, 그가 만취 상태였던 탓에 조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음주 측정만 한 뒤 귀가 조처했죠.

사건이 알려지자 슈가와 소속사는 즉각 사과문을 냈지만, 오히려 역풍을 불렀습니다. 슈가는 "가까운 거리라는 안이한 생각과 음주 상태에서는 전동 킥보드 이용이 불가하다는 점을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며 "이 과정에서 피해를 입으신 분 또는 파손된 시설은 없었지만, 변명의 여지가 없는 제 책임이기에 모든 분께 머리 숙여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는데요. 일각에선 '몰랐다', '피해를 입히진 않았다' 등 변명이 부각된 사과문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여기에 당시 음주 측정 결과 슈가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227%로 면허 취소 기준(0.08% 이상)을 훨씬 웃돈 것으로 확인됐는데요. 슈가는 경찰에 '맥주 한 잔 정도를 마셨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소속사 빅히트 뮤직의 입장문도 비슷한 맥락에서 비판받았습니다. 소속사는 "슈가는 6일 밤 음주 상태에서 집으로 귀가하던 중 헬멧을 착용한 상태로 전동 킥보드를 이용했다. 500m 정도 이동 후 주차 시 넘어졌고, 주변에 계시던 경찰을 통해 음주 측정한 결과 범칙금과 면허 취소 처분을 받았다"며 "해당 사건으로 인명 피해나 재산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았으며, 경찰 인계 하에 집으로 귀가했다"고 설명했죠.

그러나 폐쇄회로(CC)TV 영상을 통해 슈가가 타고 있던 '전동 킥보드'가 '전동 스쿠터'임이 드러나면서 파문이 일었습니다. 슈가가 정확히 어떤 모델의 이동 수단을 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CCTV 영상을 보면 그가 탄 건 앉을 수 있는 안장이 있는 '접이식 전동 스쿠터'로 확인됐죠.

전동 스쿠터는 원동기장치자전거에 해당해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사실이 적발되면 운전면허 취소·정지 등 행정처분뿐 아니라 형사처분도 받습니다. 반면 개인형이동장치에 해당하는 전동 킥보드는 음주운전 시 행정처분과 범칙금 10만 원만 부과되죠. 이에 슈가와 소속사가 사안을 축소하려고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습니다.

소속사 측은 "당사에서는 슈가가 이용한 제품을 안장이 달린 형태의 킥보드라고 판단해 '전동 킥보드'라고 설명했다"며 "일각에서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사안을 축소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으나, 논란을 완전히 잠재우진 못했습니다.

팬덤도 분열된 모습입니다. 슈가의 음주운전과 대처에 실망, 팀 탈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과도한 '실드'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팬들도 포착되는데요. 이들은 서로 극심하게 대립하며 갈등을 빚고 있기도 합니다.

▲(출처=정민재 평론가 X 캡처)
▲(출처=정민재 평론가 X 캡처)

슈가→김호중까지…강성 팬 똘똘 뭉친 '사이버불링'

일부 강성 팬들은 슈가를 향해 회의적인 의견을 낸 언론 매체부터 평론가를 향해 비난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최근 한 매체에 "슈가가 그룹을 탈퇴할진 모르겠으나 탈퇴하지 않으면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고, 국내 활동도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는데요. 곧바로 '좌표 찍기' 행태가 벌어졌습니다. BTS 해외 팬덤 계정을 중심으로 정 평론가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메일 주소 등이 확산했고, 개인 계정으로 사과를 요구하거나 인신공격, 조롱이 담긴 메시지가 이어진 겁니다.

이에 정 평론가는 15일 X(옛 트위터)에 "이 팬덤 행패 수준이 상상 초월"이라며 "아깐 국제전화가 오더니 이제 트위터 비밀번호를 바꾸려 한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아무리 하루아침에 '최애'가 범죄자가 되는 날벼락을 맞았다지만, 이런다고 슈가가 음주운전을 한 일이 사라지나. 계속해 보시길"이라고 일갈했죠.

심지어 정 평론가 아내의 인스타그램에 찾아가 댓글을 남긴 팬들도 있었습니다. 정 평론가는 "다행히 나도 아내도 이런 일엔 도가 튼 사람들"이라면서도 "좀 징그러운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혀를 내둘렀죠.

같은 팬이더라도 공격의 대상이 됐습니다. 일부 팬들은 하이브 사옥과 서울 시내에서 슈가의 탈퇴를 요구하는 트럭 시위를 진행했습니다. 슈가의 탈퇴와 소속사의 빠른 결단을 촉구하는 화환 시위도 함께 펼쳐졌죠.

그런데 시위에 앞장선 총대진의 X 계정에는 "구청 측의 실수로 일부 민원인에게 총대진의 개인정보가 블러 처리 없이 발송됐다. 개인정보 유포 시 명예훼손 등의 고발조치 들어갈 수 있다"는 글이 게재됐습니다. 이어 올린 글에선 "총대진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과 관련해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했다. 민원인 12명을 통한 총대의 개인정보 최초 유포 및 확산 정황 또한 확보했다"며 "총대진을 향한 도 넘은 비난과 루머 유포, 협박, 메일 및 모금 폼을 향한 테러, 각종 해킹 시도를 수집 중"이라고 설명했죠.

앞서 '음주 뺑소니'로 재판에 넘겨진 트로트 가수 김호중의 사례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김호중은 5월 9일 오후 11시 44분께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에서 술을 마시고 차를 몰다 중앙선을 침범해 반대편 도로 택시와 충돌한 뒤 달아나고, 매니저에게 대신 자수시킨 혐의로 구속기소 됐는데요. 당초 음주운전 사실을 부인하다가 사고 열흘 만에 범행을 시인했습니다. 경찰은 음주운전 혐의를 포함해 김호중을 검찰에 넘겼지만, 기소 단계에서는 이 혐의가 빠졌는데요. 역추산만으로는 음주 수치를 확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검찰 판단이었죠.

문제는 지난달 충북 청주, 부산 등에서 음주운전 의심 사고를 낸 뒤 음주 측정을 거부하거나 도망치는 사례가 눈에 띄었다는 겁니다. 김호중 사건 이후로 '음주운전을 해도 일단 도망가면 장땡'이라는 인식이 크게 퍼진 탓이라는 지적이 나왔는데요. 논란이 확산하며 정치권에서는 이른바 '김호중 방지법'이 잇달아 발의됐습니다. 음주측정을 방해하려 일부러 술을 먹는 경우 기존 음주측정거부죄와 같이 최대 5년 이하 징역에 처하는 내용 등입니다.

그런데 김호중의 일부 팬들은 이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문자 폭격'을 쏟아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낙선 운동 혹은 탄핵을 하겠다며 지역 사무실에 항의 전화도 걸고 있는데요. 의원들의 블로그에도, 국회 입법 예고 게시판에도 법안에 특정인 이름을 붙이는 게 지나치다며 통과에 반대한다는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일부 댓글은 의원들을 향해 정치적 불이익을 각오하라거나 김호중이 낸 세금으로 월급을 주는 거라는 등 도 넘은 내용까지 담고 있었습니다.

▲도로교통법 위반(사고후 미조치)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상 및 위험운전치상, 범인도피 방조 혐의로 구속된 가수 김호중이 5월 31일 오전 검찰에 송치돼 서울강남경찰서에서 구치소로 이감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이투데이DB)
▲도로교통법 위반(사고후 미조치)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상 및 위험운전치상, 범인도피 방조 혐의로 구속된 가수 김호중이 5월 31일 오전 검찰에 송치돼 서울강남경찰서에서 구치소로 이감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이투데이DB)

K팝 산업 사이 극심한 '경쟁 문화', 문제 없나

사이버불링이 슈가, 김호중 팬덤 전체의 문제라고 할 순 없습니다. 강성 팬들이 이들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죠.

우선 이 같은 현상에는 K팝 팬덤의 고질적인 문제로도 거론되는 '경쟁 문화'(?)가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됩니다.

특히 아이돌의 경우 음원 순위, 초동(음반 발매 후 1주일간 판매량) 등 성적으로 순위를 매기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 순위는 팀의 인기와 화제성을 증명하는 절대적인 기준 중 하나가 되는데요. 많은 팬덤이 음원 스트리밍과 앨범 구매에 열을 올리는 이유입니다.

기획사가 주최하는 팬사인회, 포토카드 등 랜덤 굿즈 증정도 사실상 이 같은 경쟁 문화를 장려하는 요소입니다. 팬사인회에 참석하거나 좋아하는 멤버의 사진을 수집하기 위해 팬들이 수십~수백 장의 앨범을 사들이면서, 기획사는 음반 판매량을 높일 수 있는 거죠.

이 같은 산업 구조는 팬덤의 끈끈한 결집과 함께 타 그룹에 대한 경쟁심, 배척성을 부추깁니다. 여기에 SNS 발달과 활발한 해외 팬 유입으로 팬덤 내 자정작용이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거론되는데요. 실로 정민재 평론가가 X에 공개한 사진에 따르면 슈가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하거나 악플을 남긴 네티즌 대다수가 해외 팬들의 계정으로 추측됩니다.

이제 시선은 논란의 당사자들에게 쏠립니다. 김호중은 1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6단독 최민혜 판사 심리로 열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위험운전치상 등 혐의 사건 두 번째 공판에서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다"고 밝혔고, 음주사고 피해자와 합의를 마쳤다고 설명했습니다. 재판에서 별다른 이견이 나오지 않으면서 이르면 10월 말께 1심 선고가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슈가는 조만간 경찰 소환 조사를 받습니다. 경찰청 관계자는 19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아직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슈가 측과)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며 "여러 의혹이나 음주운전을 하게 된 경위 등에 대해 자세하게 조사하겠다"고 전했는데요.

이 관계자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 수사팀에서 일정을 조율 중"이라며 "이번 주 중 일정을 확정할 계획이고 주말이나 야간에 부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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