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지만

입력 2024-11-20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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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해결은 한국 자본시장의 해묵은 과제였던 만큼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이 지점을 고려해도 정부와 유관기관이 추진하는 ‘밸류업 프로그램’의 출발은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대표 사례는 코리아밸류업지수다. 밸류업 프로그램 야심작으로 데뷔한 밸류업지수는 밸류업 프로그램 방향성과 효과를 향한 의구심을 품도록 만드는 주요한 계기가 됐다. 시장은 모호한 구성 종목 선정 기준, 코스피200 등 기존 지수와 유사성 등이 상장사에 밸류업 의지를 불어넣기에 부족하다고 평가한다. 이런 비판에 한국거래소는 지수 공개 3개월여 만에 ‘리밸런싱’에 나선 상황이다.

특히 밸류업지수에 편입된 일부 상장사가 밸류업 프로그램 취지에 역행하는 행보를 나타내며 실효성에 대한 물음표는 커지고 있다. 이수페타시스는 코스닥 상장사 제이오 인수를 위한 5500억 규모 유상증자 계획을 이달 8일 장 마감 후 공시했다. 이를 두고 기업에 불리한 정보를 투자자 관심이 덜한 시점에 밝히는 ‘올빼미 공시’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고려아연은 지난달 30일 자사주 매입 차입금을 상환하기 위해 2조5000억 원 규모 일반공모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했다가 약 2주 만에 철회했다. 주식 가치 희석이라는 소액주주 반발과 증권신고서를 정정하라는 금융감독원 제동에 직면하면서다. 이런 잡음은 기업이 밸류업에 충실하기보다 ‘도덕적 해이’ 질책을 감수하는 게 더 이익이라고 판단할 여지가 충분한 상황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설상가상으로 하반기 들어 밸류업 프로그램 약발은 나날이 떨어지고 있다. 미국 대선과 중국 경기 부진 등을 거치며 2400선까지 추락한 코스피는 국내보다 국외 변수에 더 취약한 한국 증시의 허약한 체력을 여실히 드러냈다. 연초 밸류업 기대감을 안고 금융·통신 등 밸류업 수혜주를 쓸어 담던 외국인 투자자는 발을 빼고 있고, 개인투자자는 ‘국장은 답 없다’를 되뇌며 미국, 일본 증시 등으로 떠나고 있다.

밸류업 지수도, 밸류업 프로그램도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결에 있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한국 자본시장 발전의 시작과 끝은 결국 기업과 투자자의 인식과 행동 변화에 있다. 다만 밸류업 정책·제도가 시장 환부를 더 세밀하게 도려내는 쪽으로 나아간다면, 시장 참여자를 밸류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유도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민 129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는 경제 지속 성장을 위해 가장 중요한 업종으로 금융산업(38.4%)을 들었다. 개개인이 한결 풍족한 삶을 누리는 데에 자본시장 성장이 꼭 필요한 작업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밸류업 참여 기업이나 국내 종목 장기 투자 주주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이 시장에서 꾸준히 거론되는 이유를 돌아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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