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ㆍSK 등 단기적 영향 '미미'
"韓 정부 외교 정책 수정 불가피"
중국에 대한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가 강화된 가운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우리 반도체 기업들에 당장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미국이 규제 수위를 높이고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는 피해가 불가피해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그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취했던 ‘전략적 모호성’ 외교 전략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3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의 대(對)중 수출 규제 대상에 국내 기업의 고대역폭메모리(HBM)가 포함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매출에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 이번 특히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보다 중국 공급 비중이 큰 만큼 상대적으로 더 크게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실리콘관통전극(TSV)으로 연결한 메모리다. 기존 D램 대비 데이터 용량이 크게 늘고, 처리 속도도 빨라 AI 시대 필수 메모리로 꼽힌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HBM 매출의 약 20% 정도가 중국에서 나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의 중국 수출용 AI 칩인 ‘H20’에 탑재되는 HBM3를 일부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중국 기업들은 미국의 수출 규제에 대비해 삼성전자의 HBM을 선제적으로 구매해 비축해 두기도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일부 사양이 낮은 HBM을 중국에 수출하지만, 비중이 작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당장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고,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이번 제재를 면밀히 검토하고, 관련 기관과 협의해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SK하이닉스는 HBM 전량을 엔비디아 등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공급하고 있어 피해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재 주력 양산 제품인 HBM3E(5세대)는 현재 엔비디아의 수요를 모두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공급이 한참 모자란 상황이다. 차세대 제품인 HBM4(6세대) 역시 주로 미국 빅테크 기업들을 타겟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에는 유전체 증착 장비, 클리닝 장비 등 첨단 반도체 장비 24종 역시 포함됐다. 이에 따라 일부 국내 반도체 장비 기업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4일 반도체 장비 업계 간담회를 통해 미국 조치의 상세 내용을 공유하고, 향후 지원 방안 모색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내년 트럼프 행정부 복귀에 따라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가 향후 대폭 강화될 것으로 예상하는 만큼 한국 정부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규제는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시작해 점차 강화하고 있다.
2020년 미국은 중국이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기업 ASML로부터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공급받는 것을 막았다. 2022년에는 18나노미터(㎚, 1㎚=10억분의 1m)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14㎚ 이하 로직 반도체 관련 장비 수출을 통제했다.
이에 우리나라가 미국과 중국 사이의 외교 전략을 과감히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간 한국은 큰 틀에서는 미국의 제재에 동참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중국과도 협력하는 이른바 전략적 모호성 정책을 펼쳐왔다. 미 상무부는 미국과 동등한 수준의 수출통제 제도를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일본, 네덜란드 등 33개 국가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이번 규제를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이제 물타기식의 전략적 모호성 정책은 통하지 않는다”며 “한국 정부가 다른 나라들보다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부분이 없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제는 명확하게 하나의 동맹 체제로 가고 있는 만큼 경제 정책에서도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미국의 HBM 수출 통제는 31일부터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