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왕국 재건’ 꿈꿨지만 경영난 지속
엔비디아 독주 대응책 놓고 갈등
2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인텔은 겔싱어 CEO가 1일 자로 퇴임했다고 밝혔다. 공식적인 후임은 정해지지 않았고 이사회가 추후 새로운 CEO를 선임한다는 계획이다. 그동안에는 데이비드 진스너 최고재무책임자(CFO)와 미셸 존스턴 홀트하우스 사장의 임시 공동 CEO 체제로 가기로 했다.
겔싱어 CEO는 성명에서 “오늘은 당연히 씁쓸한 기분이다. 이 회사는 내 커리어의 대부분을 차지해왔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우리가 함께 이룬 모든 것들을 자랑스럽게 되돌아볼 수 있다”며 “현재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힘들지만 필요한 결정을 내렸던 지난 한 해는 우리 모두에게 도전적인 한 해였다”고 소회를 전했다.
인텔 투자자들은 회사의 변화를 보고 싶어서 처음에 겔싱어의 사임에 박수를 보냈다. 인텔 주가는 장중 최대 6%까지 급등했다. 그러나 마감 시 0.5% 떨어져 올해 하락 폭은 52%에 이르렀다.
그의 사임이 즉시 효력이 발생하고 후임자가 아직 임명되지 않았다는 점은 자발적인 퇴임이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소식통은 겔싱어 CEO가 이사회로부터 스스로 물러나거나 해임되는 것 중에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었다고 전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데이터센터용 인공지능(AI) 반도체에서 엔비디아가 독주하는 가운데, 지난주 이사회에서 대응책 마련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극에 달했다. 블룸버그는 “겔싱어의 위기 극복 계획에 대해 이사회가 신뢰를 잃었다”며 “너무 느린 진전에 좌절했다”고 전했다.
겔싱어는 2021년 취임 당시 인텔을 재건할 구원투수로 기대를 모았지만, 전임자들처럼 씁쓸하게 퇴장하게 됐다. 그는 1979년 엔지니어로 입사해 인텔 최초의 최고기술책임자(CTO)까지 오른 뒤 2009년 회사를 떠났다. 이후 2021년 2월 위기에 빠진 인텔을 구하기 위해 CEO직으로 돌아왔다.
취임 후에는 ‘반도체 왕국 재건’을 목표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재진출 등 야심 찬 계획을 추진해왔다. 최근 조 바이든 현 미국 정부로부터 ‘반도체 지원법’을 통해 78억6500만 달러의 직접 자금 지원을 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파운드리 사업이 고전하면서 고객 확보가 좀처럼 진척되지 않았다. 인공지능(AI) 시장 개척도 늦어지면서 실적 또한 부진했다. 인텔은 8월 전체 직원의 15%에 달하는 약 1만5000명 인력 감축을 발표했다. 3분기에는 166억 달러(약 23조3479억 원) 규모의 역대 최대 순손실을 냈다. 기술 혁신의 흐름에 뒤처져 회복의 길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경영 수장으로서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컨설팅 회사 제이골드어소시에이츠의 잭 골드 수석 애널리스트는 “새로운 CEO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며 “실적 회복 경험과 반도체 산업에 대한 이해가 모두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