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성실공시 법인' 퇴출 속도 내겠다더니, 현실은 사상 최대

입력 2025-02-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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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를 늦게 하거나 내용을 빠트린 불성실공시 법인이 많이 증가했다. 금융당국이 시장신뢰 회복을 위해 ‘불성실공시 퇴출’ 강화에 나섰지만,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21일까지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되거나 지정 예고된 유가·코스닥·코넥스 상장사는 75곳이다. 새해가 시작된 지 2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70개 이상의 기업이 불성실 공시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년 전 같은 기간 43곳보다 2배가량 많다. 추세를 고려하면 올해 불성실공시 법인 지정 기업은 사상 최다를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예년 상반기 수준을 훌쩍 넘긴 상태다.

시장별로는 코스닥 기업이 53곳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유가증권시장(코스피) 17곳, 코넥스 5곳이다. 코스닥 기업의 수가 가장 많은 이유는 재무상태가 불안정한 비우량 기업 사이에서 단기 차입금을 통한 자금조달 과정에서 난항이 대거 생긴 것으로 보인다. 전환사채(CB)와 타법인주식·출자증권 취득, 유상증자 발행 등으로 재무구조 개선을 시도했지만, 기업의 미래 사업성을 낮게 예상한 투자자들이 투자 계획을 접으면서 공시가 철회되는 상황이 잦았기 때문이다.

코스피 기업의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이 눈에 띄게 늘어난 점도 큰 변화다. 불성실공시법인에 지정된 코스피 상장사는 17곳으로 1년 전 같은 기간 7곳 대비 2배 이상 급증했다. 광명전기, STX, 고려아연, 대양금속, OCI, 금호전기 등이 공시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자금조달의 어려움은 적지만 금전대여, 생산중단, 회사합병 등 기업 악재를 빈번히 지연공시했다. 공시가 늦어진 까닭은 주가에 즉각적인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풀무원의 경우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풀무원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3조2137억 원, 910억 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7%, 47% 급증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해외사업 호조가 이어지면서다. 그러나 지난 12일 풀무원식품이 산업디자인 및 출판·인쇄업을 영위하는 디자인 자회사 씨디스어소시에이츠를 흡수합병한 것에 대해 4거래일이 지난 18일 뒤늦게 공시했다. 거래소는 이와 관련해 풀무원의 불성실공시 법인 지정 예고에 나섰다.

풀무원의 불성실공시는 16차례 반복됐다. 2009년에도 풀무원은 생산자회사 무증자 합병공시를 했다가 이를 취소하면서 불성실공시에 지정됐고, 2020년에는 서울지방국세청으로부터 추징금 부과를 늦게 공시해 예고 통보를 받았지만, 최종 심의에서 취소 결정을 받았다.

상습적인 공시 위반으로 신규 상장사처럼 공시 제도에 미숙했다고 보기 어렵다. 공시가 늦어지면 당장 주가 하락은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향후 투자자 신뢰도 저하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추진 중인 밸류업(가치 제고) 정책에도 걸림돌이 된다.

단일판매·공급계약 체결을 중심으로 불성실공시 법인으로 지정된 사례도 많았다. 코스닥 시장에서 코오롱생명화학, 알에프세미, 디와이피엔에프, 팅크웨어, 케이아이엔엑스, 알멕 등이 있었으며, 유가증권시장에도 STX가 지정됐다. SK디스커버리는 단일판매·공급계약 정정공시가 지연됐지만, 감경에 따른 벌점 미부과로 최종 미지정됐다.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당국은 불성실공시 근절을 위해 공시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공시 위반이 반복하는 회사에 가중 조치를 적용하는 등 상습적으로 공시 위반을 저지를수록 무거운 조치를 한다. 지난해 11월에는 정기보고서와 단일판매·공급계약체결 공시 서식도 개정해 투자자에게 관련 정보가 충분히 제공돼 투자 판단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했다. 기존의 공시 서식은 주요 계약조건을 자유롭게 서술할 수 있어 불리한 정보나 계약상 필수 정보는 비공개에 부치는 경우가 많았다.

기업들의 불성실공시 지정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경영환경 악화로 기업들이 기존의 자금조달 계획을 철회하는 등 번복이 생기면, 투자자 신뢰가 감소해 자금조달 시장에 부정적인 분위기가 확산한다. 기업들이 장기적인 재무 계획을 공시하는 데 어려움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자본시장법상 공시 의무를 위반한 130건 중 위반 동기가 고의·중과실로 판단돼 과징금 이상 중조치를 받은 건수는 66건으로 절반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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