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7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2월 25일 금통위 이후 이날까지 52일 동안 벌어진 예기치 못했던 상황들을 마주하고 나서 실토한 말이다.
“너무 낙관적이었다”는 표현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먼저 전망의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총재의 고백이 담겨 있다. 그리고 현재 상황을 반영한 전망을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다는 호소가 녹여져 있다.
한은이 2월에 전망했던 올해 경제성장률은 1.5%다. 분기별로는 △1분기 0.2% △2분기 0.8% △3분기 0.7% △4분기 0.5%다. 이날 한은은 1분기 성장률은 마이너스(-)를 보일 수 있고, 연간 성장률은 1.5%를 밑돌 수 있다고 알렸다. 당장 일주일 후(4월 24일)에 발표할 1분기 GDP 성적표와 43일 후(5월 29일 금통위)에 발표할 수정경제전망에 앞서 중간점검을 공개한 것이다.
한은은 24일에 올해 1분기 GDP 성적표를 내놓는다. 마이너스 성장을 예고했지만 당초에 추정했던 숫자와 편차가 클 경우 ‘전망 실패’라는 뭇매가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전망 오차를 향한 지적 전에 한은 전망이 갖는 의미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은의 경제전망은 통화정책의 방향을 설정할 때, 경제주체들이 의사결정을 할 때 나침반 역할을 한다. 반기, 연간 기준으로만 공개했던 것을 작년 8월부터 분기별로 더 쪼개서 공개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만 다뤘던 숫자를 외부로 공표한 것은 갈수록 복잡해지는 경제 환경을 판단하는 데 보탬이 되고자 하는 취지가 반영돼 있다. 한은이 숨기지 않고 외부로 공개하는 데이터를 ‘다트판 속 숫자’가 아닌 현재 상황을 해설해주는 ‘가늠자’로 대해야 하는 이유다.
2월 금통위부터 4월 금통위까지 정치적 불확실성은 소멸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미국 관세 정책의 강도는 당초 예상을 뛰어넘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은 상호관세에 대해 100%를 훨씬 넘는 비현실적인 숫자를 주고받고 있다. ‘괴물 산불’로 불리는 재해도 예상하지 못했다.
밤사이에 나오는 미국 대통령의 한 마디에 경제가 들썩이는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더 깊은 대화가 필요합니다.”
문형배 헌법재판관이 18일 퇴임식에서 건넨 인사다. 대통령 탄핵 사건을 다뤘던 재판관 중 한 명이기 때문에 퇴임사가 더 시선을 끌었다. 그의 퇴임 인사를 더 살펴보면 “대화는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는 과정과 경청 후 자신의 의견을 수정하는 성찰의 과정이 포함된다”고 했다.
경제·정치·법조계가 사용하는 어휘는 서로 다르다. 그러나 공통된 담론은 어휘의 경계를 벗어나 각 계의 상황에 녹아든다. ‘한국은행 전망’이 갖는 의미를 한 재판관의 퇴임사에서 찾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한은이 며칠 후에 공개할 ‘1분기 GDP 성적표’에서 주목해야할 부분은 다트판 속 숫자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제 체력은 어느 정도이고, 불확실성을 얼마나 견딜 것으로 보고 있는지에 대한 진단에 더 집중해야 한다.
지적과 훈수를 둘 때 화자와 청자의 관계는 일방적이다. 그러나 지금은 여느 때보다 ‘더 깊은 대화’가 필요할 때다.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들이 발생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럭비공이 정신없이 튕기는 상황에서 한은의 경제전망이 경제주체들에게 가늠자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경제주체들도 중앙은행의 데이터로부터 도움을 받길 바란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경제에 관한 더 많은 대화와 고민을 끌어내는 것, 혼란함이 가득한 지금 한은 경제전망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