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누가 되든 ‘병풍’은 이제 그만

입력 2025-04-20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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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초희 부국장 겸 산업부장

재계총수들 들러리 세우는 정치권
소통 명분삼아 ‘협조’ 요구 일상화
대선 계기로 상호존중 자리잡히길

▲이초희 산업부국장 겸 부장
▲이초희 산업부국장 겸 부장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한 청문회는 참으로 볼 만했다. 개별로 등장했어도 경제신문 앞면을 차지했을 만한 재계 총수들이 청문회장에 몰려나와 앉아 있는 광경은 가히 장관이었다. 어쩌다 저 양반들이 저기 나와서 국회의원들의 호통에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손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수모를 당하고 있나 싶어 내심 우습기도 했다.

청문회장의 광경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했다. 돈으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재벌들이지만, 5년짜리 절대 권력 앞에서는 그냥 야단 맞는 초등학생 정도라는 거다. 이 구도가 비정상이라면 잘못은 총수들일까, 권력일까.

윤석열 전 대통령이 엑스포 유치 실패로 부산 시민을 달래겠다며 재벌총수들을 우르르 몰고 부산 전통시장에서 떡볶이 먹방을 벌였던 장면은 우스움을 넘어 기괴하면서도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그 광경 속에서 가장 우습게 보였던 것은 재벌일까, 권력일까.

대통령선거가 이제 40여 일밖에 남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대통령이 없던 기간이 우리 기업들은 차라리 낫다며 잠시나마 한숨을 내쉬었을지 모른다. 대선 시즌을 지나 정권이 교체되면 여지없이 정치권력의 부름에 이리저리 병풍 노릇을 하는 일이 지금까지의 관례였다. 이제 곧 닥쳐올 일들을 떠올려보면 지금이 바로 총수들에게는 잠깐 동안의 휴가일 수도 있다.

여야 구분 없이 정치인들이 선거철만 되면 재계 총수들을 불러다 ‘협조’를 요청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권위주의 시대부터 이어져 온 구태의연한 풍경이다. 대통령 선거든 국회의원 선거든 정치인들은 기업을 찾아가 지지를 호소하고 협조를 당부한다. 기업들은 싫다고 말하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정치 권력의 민망한 ‘구걸 정치’가 이제는 일상이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는 자신의 치적으로 삼고자 했던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재벌들을 줄세웠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8개 대기업 회장들을 청와대로 불러 호프타임 미팅을 가졌다. 모두 소통을 위한 자리라는 명분이었지만 결국 기업들을 병풍 삼아 소위 그림을 만든 행사에 불과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얘기다.

이런 ‘동원’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모습이다. 강제 동원은 기업 활동을 왜곡시키고 더디게 한다. 시장경제의 주체로서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성장해야 하는데 정치권력의 입맛에 따라 좌지우지되면 경쟁력을 상실한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기업 방문은 ‘보이지 않는 압박’이다.

우리 기업들은 세계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반도체,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주력 산업이 중국의 추격을 받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와 미국의 관세 폭격에 글로벌 공급망도 흔들린다. 이런 때 정치권이 기업을 선거판으로 끌어들이는 건 국익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와 기업의 관계는 상호 존중과 자율성이 전제돼야 한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처럼 기업을 정부 정책의 들러리로 동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정부-기업 관계를 고민해야 한다.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인 ‘동원’과 ‘철두철미한 상하관계’는 21세기에 걸맞지 않다. 떡볶이 한 그릇을 나누며 친근함을 연출하는 것보다 서로를 견제하고 협력하는 건강한 관계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 정부는 기업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여담이지만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이 남긴 명언이 있다. “행정력은 3류, 정치력은 4류, 기업경쟁력은 2류” 다. 4류가 2류에게 오라 가라 하는 것부터가 도리에 맞지 않는 얘기다. cho77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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