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2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상법 개정을 재추진하겠다”고 했다. “소액주주를 대표하는 이사도 선임될 수 있도록 집중투표제를 활성화하고, 감사위원 분리 선출도 단계적으로 확대해 경영 감시 기능을 강화하겠다”고도 했다. ‘더 센’ 상법 개정을 재추진한다는 공약이다.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은 최근 국회 재표결 끝에 폐기된 기존 개정안에도 없던 내용이다.
6월 대선의 강력한 주자인 이 전 대표는 “회복과 성장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해 주가지수 5000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상법 공약이 곧 주식시장 활성화 대책인 것으로 믿는다는 뜻이다. 그는 이날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한 정책간담회’에 참석해서도 같은 주장을 했다. “국장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황당한 말까지 생길 정도로 외국인 투자자들도 한국 시장에 대한 불신이 많다”며 “이번에 상법개정에 실패했는데 최대한 빨리 다시 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 주도로 지난달 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뿐 아니라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다. 쪼개기 상장이나 불합리한 합병비율 산정 등으로부터 개미투자자를 보호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소송 남발과 경영 의사결정 위축 등 큰 부작용이 예상돼 경영계와 학계는 진작부터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다. 그래서 행정부도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다.
실제 기존 개정안은 위험천만하다. 소액주주 누구든 이사가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하면 소송을 제기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경영 리스크, 사법 리스크가 감당할 수 없게 커지는 것이다. 해외 투기자본이 소수 지분을 갖고서 경영상의 중요 결정을 뒤흔드는 상황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1%대로 떨어지고, 글로벌 통상전쟁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비상한 시국이란 점도 문제다. 기업 발목을 잡는 좌편향 입법을 하면 국가적 자충수가 될 수밖에 없다. 국부와 일자리를 지키는 열정적 토종 기업들도 해외로 빠져나갈 길을 찾게 마련이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최근 취임 4주년 간담회에서 “지금이 상법을 바꿀 타이밍인지 의문이 든다”라고 했다. 오죽하면 그런 공개발언이 나왔겠나.
이 전 대표는 이달 초 유튜브 채널에서 “원래는 자본시장법을 개정해야 한다. 상법을 개정하면 일반 회사, 가족 네 명이 주주인 곳까지 적용된다”고 했다. 타격 범위가 과도하게 넓은 상법 개정보다 2600여 개 상장기업에 적용되는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한 ‘핀셋 규제’가 낫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제대로 본 것이다. 하지만 이 전 대표가 정작 꺼내 든 것은 더 센 상법 개정 공약이다. 역주행을 택한 것이다. 표 득실만 따진 정략적 행보로 읽힐 수밖에 없다. “기업이 잘돼야 나라가 잘 된다”고 말하던 정치 지도자가 이래도 되는 건가. 민주당은 그러잖아도 주 52시간 과잉 규제나 노란봉투법, 중대재해법 등 반시장·반기업 폭주를 거듭해 왔다. 거기에 ‘상법 개악’까지 보태고 있다. 이래서야 어찌 ‘주가 5000시대’가 열리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