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 글로벌 금융 환경 바꾸는 중…한국 다소 뒤쳐져
“룰 세팅만 된다면 따라 잡을 만해…韓 브랜드ㆍ기술력있어”
국내 전문가들이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영향력을 더욱 키우고 있는 스테이블코인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나섰다. 이들은 한국의 스테이블코인 관련 정책과 인프라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부족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오피스에서 ‘스테이블코인의 역습 : 금융 질서의 재설계’ 콘퍼런스가 23일 개최됐다. 이번 행사는 한국핀테크산업협회(핀산협) 디지털자산인프라협의회와 서울국제금융오피스가 공동 주최·주관했다.
핀산협 디지털자산인프라협의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정구태 인피닛블록 대표는 이날 발제자로 나서 “스테이블코인은 디지털 시대의 달러이고, 블록체인 위에서 구축된 새로운 금융 인프라”라면서 “미래 금융이 그 인프라를 통해 움직이고 있고, 우리나라도 이와 같이 움직였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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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대표는 총 1경5000조 원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는 세계 1위 자산운용사 블랙록이나 글로벌 간편결제 1위 기업 페이팔 등이 앞서서 스테이블코인과 가상자산 산업에 뛰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우리나라도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면 스테이블코인과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모두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은행의 조사 자료를 보면 페이팔은 이미 3년 전에 가맹점에서 가상자산으로 직접 결제하는 서비스가 나왔는데, 한국은 아직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는 사실이 안타깝다”면서 “기술력이 떨어지지 않는 만큼, 정책과 규제 방향성만 정해지면 우리도 빠르게 따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서희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역시 스테이블코인이 제도화돼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지급결제 측면 뿐아니라 산업 인프라 측면의 발전을 견인할 것으로 봤다.
한 변호사는 “스테이블코인이 도입되면 우선 커스터디 산업이 발달할 것으로 보이고, (활용을 위해서는) 멀티체인 환경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브릿지 기술 등 블록체인 기반 기술들이 발전할 것”이라면서 “국내는 지갑 사업도 비교적 약했는데, 스테이블코인이 허용되면 국내 지갑 사업도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 변호사는 한국도 이제는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결정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그는 “최근까지도 한국은행과 자본시장연구원 등은 스테이블코인을 경계 중인 것 같다”면서도 “미국이나 일본, 싱가포르 등은 이미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한 규제를 만들어놓은 만큼 우리나라도 이걸 논의해 이제는 (어느 방향으로 갈지) 결정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종섭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의 밸류업을 위해서라도 스테이블코인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수출 과정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활용 사례가 생길 수 있고, 동남아 지역에서 이런 수요가 발생한다면 추가적인 금융 사업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면서 “해외로 나가는 디지털 비즈니스를 통해 벨류업하고, 원화 중심의 지급결제 서비스를 제공할 기회를 원한다면 스테이블코인 형태의 공격적인 지급결제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일본 등 아시아로 사업 확장을 노리고 있는 DSRV의 서병윤 미래금융연구소장도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 사이에서 고민하는 건 잘못된 것 같다”면서 “스테이블코인을 기반으로 재편될 글로벌 금융 생태계에서 우리만 갈라파고스가 돼도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만약 무역을 하는 업체가 상대 기업이 유에스디코인(USDC)으로 대금을 결제하겠다고 하는데 규제 문제로 받지 않는다고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 소장은 “이미 명절과 같이 외환 시장이 문을 열지 않는 날에도 가상자산거래소의 스테이블코인 가격을 보면 환율 움직임을 알 수 있다”면서 “이걸 국내 금융 생태계에 어떻게 통합할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서 소장은 한국도 아직 늦지 않았다는 점도 함께 강조했다. 그는 “최근 한·싱가포르 사이 국경 간 스테이블코인 결제 사업을 준비하면서 느낀 점은 ‘한국이 빨리 가면 따라잡을 수 있겠다’는 것”이라면서 “한국이라는 브랜드와 높은 규제 수준에 대한 신뢰가 있는 만큼, 당국에서 룰 세팅만 빠르게 해줄 수 있다면 아시아에선 충분히 앞서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