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미‧우크라‧유럽 3개국 외무장관 회담도 취소
트럼프 “3년 안에 나라 전체 잃을 것” 경고
젤렌스키 “비전에 의견 제시한 것...평화로 이어지길”
위트코프 특사, 25일 러 방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했던 러‧우 전쟁 종전 협상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모양새다. 트럼프 행정부의 중재안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요구만을 반영했다고 반발하면서 23일(현시지간) 미국과 우크라이나, 유럽 3개국 외무장관 회담이 전격 취소되는 등 협상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영국 런던에서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 특사, 우크라이나와 영국·프랑스·독일 외교장관들이 모여 논의키로 했던 외교장관 회담이 취소되고 실무급 회의로 축소됐다. 미국이 러시아와의 물밑접촉으로 마련한 중재안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전날 강하게 반발하면서 미국 측이 참석을 취소했다.
17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회의 이후 미국이 제시한 중재안에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인정과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배제 등이 포함됐다. 구체적으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벌인 10년간의 전쟁에서 점령한 대부분 영토를 현재 전선에서 동결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럴 경우 크림반도 병합이 인정된다.
또 러시아의 재침공 시 미국의 군사 지원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고, 유럽 군대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수 있다는 여지만 남겼다. 러시아가 원한 우크라이나군 규모 제한은 포함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광물 개발 협정을 통해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투자하면 그 자체로 실질적인 안보 보장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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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런던 회의를 최후통첩으로 간주하고 임했지만, 우크라이나의 반발이 거셌다고 WSJ는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크림반도를 원한다면 왜 11년 전 싸우지 않았냐”며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금도) 평화를 가질 수 있다. 아니면 3년 안에 나라 전체를 잃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도를 방문 중인 J.D.밴스 미국 부통령도 거듭 종전 구상을 설명하며 양측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협상에서 손을 떼겠다고 압박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최종 합의 전 휴전 △크림반도 병합 인정 거부 △추후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직‧간접적 명시 등을 요구했다. 율리바 스비리덴코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엑스(X‧옛 트위터)“러시아가 재정비하고 더 큰 폭력을 행사하기 위한 기반을 줄 합의는 없다”고 강조했다.
영국과 프랑스도 영토 양보안에 대해선 수용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게다가 영국과 프랑스 등이 주도하는 유럽 연합군 창설 계획에 있어서도 미국이 물류 및 항공 지원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할 경우에만 가능할 것이라고 WSJ는 짚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러시아에 지나치게 우호적인 중재안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알리나 폴리아코바 유럽정책분석센터(CEPA) 사장은 WSJ에 “러시아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원하는 것을 얻고 있는 수준”이라며 “협상에 너무 좌절한 미국이 우크라이나 러시아 최대주의적 요구를 받아들이는 데 동의하기만을 바라는 것 같다. 미국이 (진정한 중재를) 포기하고 이대로 (협상을) 밀어붙인다면 러시아는 진정한 승리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늦게 SNS를 통해 “우크라이나는 헌법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며 동맹국들의 이해와 지원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감정이 고조되고 있지만, 5개국이 만나 평화에 가까워진 것은 좋은 일”이라며 “미국 측이 비전을 공유했고, 우크라이나와 다른 유럽 국가들이 의견을 제시했다. 공동 작업이 지속적인 평화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위트코프 중동 특사는 25일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면담한다.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 모두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식을 위해 로마로 이동할 예정이며, 이들이 이곳에서 만날 가능성도 있다고 WSJ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