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호의 정치원론] 公私 구분 못하는 정치 ‘배신론’

입력 2025-04-24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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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국민기대 저버릴 때 ‘공인의 배신’
공적가치와 사적배신 섞여선 안돼
양대정당 구태 못벗으면 미래없어

정치인과 관련해 언급되는 ‘배신’은 공적 개념이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당대표든 공인으로서 응당 해야 할 책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잘못된 행동을 해 국민의 기대를 저버릴 때 쓸 수 있는 말이다. 사적 배신과는 다르다. 가족, 친구, 친지 등 사인끼리는 서로 허물을 너그러이 감싸지 않고 그걸 꼬투리 잡아 비난하거나 괴롭히거나 관계를 끊을 때 배신이라는 말을 쓸 수 있다. 그러나 공인이 각자 책무에 충실히 임하고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려 노력하는 가운데 다른 공인을 비판하거나 그와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일이 생긴다면 배신했다고 말할 수 없다. 적어도 정치가 공적 차원으로 작동하고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그렇다.

이와 달리, 정치가 주군-가신(家臣) 관계처럼 사적으로 움직이거나, 친목 단체처럼 대충 자의적으로 흘러가거나, 조폭처럼 절대적 기율로 경직되게 작동하는 곳에서는 공사(公私)가 뒤섞여 논의가 혼란스러워진다. 이런 곳에선 정당한 공적 행위가 사적 영역에서처럼 배신이라고 폄하되기도 한다. 공적 책무의 방기가 오히려 충의·충성이라고 추켜세워지기도 한다.

요즘 국민의힘의 상황이다. 명분도 아리송하고 절차도 비정상적인 계엄을 자행해 헌법재판소의 만장일치 파면 결정을 받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비판하고 손절하려 했던 당내 ‘찬탄’ 인사들을 배신 프레임에 넣으려는 분위기가 있다. 이 분위기 속에서, 대통령을 고언으로 깨우려 하기는커녕 군주처럼 보위하려 했던 ‘반탄’ 인사들은 의리와 충절을 지킨 사람인 양 고개를 들고 ‘배신자’들을 향해 도끼눈을 뜨고 있다. 2015~2017년의 재연이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을 야당과 합의 통과시킨 유승민 여당 원내대표에게 배신자 낙인을 찍었다. 박 대통령이 국정 농단과 정치적 무능력으로 탄핵당한 뒤엔 유 의원과 비박(非朴) 의원들이 배신의 오명과 원망을 뒤집어썼다. 공인의 공적 행위에 사적 배신 개념을 잘못 쓴 것이다.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배신론이 정치권을 지배할 때 폐해가 심각해진다. 첫째, 공적 가치와 원칙이 더욱 훼손된다. 정치인들은 국가 전체, 국민 모두를 바라보며 공적 가치와 원칙이 무언지 찾고 따라야 할 공인이다. 자기네끼리 편 갈라 우리는 똘똘 뭉치고 상대는 무조건 배격하는 당파 놀이 혹은 동네 패싸움이나 하려고 공직을 추구하는 한량이 아니다. 당론을 지키지 않으면 배신자라는 말이 종종 들리는데, 공당(公黨)의 입장답게 정당한 절차를 통해 당원의 전반적 의견을 수렴하는 게 아니라 최고 권력자의 자의적 결정을 당론이라고 포장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지금은 절대왕정 시대가 아니다. 설혹 절차상 정당하게 나온 당론이 있다고 해도 다양성의 탈대중사회를 맞은 오늘날 절대적일 수 없는데, 하물며 좌고우면 없는 권력자의 변덕스럽고 경솔한 기행을 그냥 맹종해야 하는가. 사람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 사적 배신 개념이 정치의 공적 가치와 원칙보다 앞설 수는 없다.

둘째, 배신론은 자기의 잘못을 남 탓으로만 돌리므로 진지한 반성을 통해 변화·향상할 가능성을 차단해 버린다. 국힘이 유권자의 지지를 잃고 지리멸렬해진 게 찬탄 인사들 때문인가. 그들이 “배신”하지 않았다면 잘 되고 있을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공당답지 않게 최고 권력자와 주변 모리배의 눈치만 보며 내부 다양성과 주체적 활기를 스스로 죽인 그동안의 잘못과 책임엔 눈감아버리는 거라 변혁을 전혀 기대할 수 없다.

수권 정당이라면 공당다워야 한다. 사적 배신 개념에 매몰돼 공적 성격을 버려선 곤란하다. 국민의힘과 경우가 좀 다르나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양대 거대 정당들이 사적 논리의 구습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조기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한국 정치의 앞날은 암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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