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소비자 무시한 '중기적합업종'

입력 2011-10-2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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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 자유기업원 초빙연구위원

동반성장위원회는 9월 27일 중소기업 적합업종-품목을 1차로 16개를 선정하여 발표하였다. 세탁비누 품목은 대기업의 사업철수를, 골판지상자, 플라스틱금형 등 4개 품목은 진입 자제를, 고추장, 간장, 막걸리, 재생타이어 등 11개 품목은 확장 자제를 권고하였다.

그러나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은 시장의 경쟁과 발견과정을 방해하는 장벽으로 작용하므로 우리에게 ‘성장’을 가져다주지도 못하며, 어려운 사람들의 처지를 개선한다는 보장도 없다.

경제학에는 기업의 규모에 관한 논의가 있을 뿐 어떤 특정 품목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인지 검토하는 부분이 없다. 어떤 특정 재화, 예를 들어 두부를 생산하는 기업이 있다고 할 때, 두부의 객관적 성격을 검토해서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나누는 기준의 자의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생산의 최적 규모를 알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특정한 장소와 시간에 존재하는 소비자들이 특정한 두부를 어떤 가격일 때 얼마나 수요하고자 하는지, 즉 그들의 주관적 선호를 고려하지 않는 한 그리고 특정한 수량을 생산할 때 얼마나 비용이 드는지 알지 못하는 한 우리는 최적규모를 알아낼 수 없다.

이런 소비자들의 주관적인 생각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으며, 두부를 만드는 기술도 얼마든지 새로운 것이 등장할 수 있다. 혼자서 핀을 만들 때 하루 한 개도 만들기 어렵지만 여러 명이 작업과정을 분업화한 아담 스미스의 핀 공장에서는 하루에 1인당 수백 개 생산할 수 있다. 그러나 핀에 대한 수요량이 하루 한 개 정도에 불과하면, 분업화된 핀 공장은 등장하지 않는다. 운송비가 매우 낮아져서 핀에 대한 수요가 충분히 커지면 시장경쟁을 통해 분업을 하는 핀 공장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현재 수요가 작은 상태에서 핀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결정하고 다른 생산방식을 실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경쟁과정을 통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여 새로운 핀 생산의 최적 규모를 발견하는 과정 자체를 봉쇄한다.

지금 현재 이윤을 내면서 생산하는 기업들의 규모를 조사해서 이것을 최적규모로 단정할 수도 없다. 아직 시도해 보지 않은 규모와 방식이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자동차 모델 T가 나오기 이전의 시점에 최적 자동차생산 규모를 조사했다 하더라도 그 결론은 모델 T가 나온 이후 수정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시장에서 특정 재화나 서비스의 생산에 있어 최적규모란 기업가들이 다양한 규모를 포함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이에 대해 소비자들이 선택하는 시장경쟁의 과정에서 그 규모가 정해지고 계속 변화해 간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왜 참여정부에서조차 5년 전 중소기업 고유업종이라는 제도를 폐지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특정한 재화나 서비스를 중소기업에 고유하다거나 적합하다고 미리 단정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업종의 중소기업 고유업종 지정은 기존 기업들 중 대규모 기업을 퇴출시키는 강제적인 명령에 해당한다. 만약 아직 대기업이 진입하지 않은 업종이라면 대기업의 진입을 처음부터 금지하는 진입장벽을 세우는 것이고, 동시에 현재의 중소기업이 대규모 확장하여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도 금지하는 셈이 된다. 그래서 이런 유형의 규제는 자원의 효율적 사용을 저해하고 특정 기업과 거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소비자들을 포함한 여타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셈이 된다.

그렇다고 이런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으로 인해 더 어려운 입장의 사람들이 이득을 보는 것도 아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을 두고 논란을 빚고 있는 내비게이션의 경우가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내비게이션의 경우 독자적인 브랜드를 가진 중소기업들은 내비게이션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을 원하고 있으나, 대기업 납품업자들은 대기업의 철수 시 매출 급감으로 회사문을 닫아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내비게이션을 적합업종에서 제외시켜 달라”는 탄원서를 동반성장위원회에 제출하였다. 내비게이션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선정될 경우 상대적으로 더 열악한 납품업체들의 처지가 더 악화된다.

이처럼 중소기업 적합업종이라는 개념 자체가 문제를 안고 있어서 이를 선정하는 것 자체가 무리한 결정과 논란을 낳는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정책은 자원의 효율적 사용을 방해함으로써 성장에도 기여하기 어렵고, 약자의 처지를 개선시킨다는 보장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책은 생산자들이 자신의 책임 아래 다양한 규모와 방법을 시도하여 소비자들의 수요를 발견하려는 노력을 방해하고, 소비자들이 그런 노력이 있었더라면 늘어났을 선택의 여지를 없앤다. 그래서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의 변종인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은 지금이라도 중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김이석 자유기업원 초빙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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