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생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잊고 지내던 기억일까.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나 역시 철없던 10대 시절, 세상에 자신만만하던 20대 시절에도 항상 불안해 했던 것 같다. 매사에 현실은 마음에 들지 않고, 보이지 않는 미래는 막연하기만 했기에 두려움은 나를 휘감고 있었다. 내가 꾸는 꿈이 뭔지도 모른 채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그 두려움에 따른 공포가 커질수록 불안도 커져갔다. 두려움을 이기려 학원으로 도서관으로 다니며 책과 씨름했고, 때론 그 두려움을 잊기 위해 술로 밤을 지샌 적도 여러 날이었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자. 후배의 푸념속에서 얻은 깨달음이 떠오른다. 그건 바로 불안함이 주는 순기능이다. 미친개가 뒤쫓아오면 안 물리기 위해 전력 질주하는 것처럼, 자신도 모를 사이에 꽤 많은 것을 이루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가 불안함이다. 오늘에 불만족하고, 내일에 대한 두려움은 불안함을 키우지만, 그런 불안함으로 자기 혁신을 꾀해볼 수 있지는 않을까.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감독 오시이 마모루. 그는 세상엔 95%의 쓰레기와 제대로 인정받은 5%만이 존재하며, 자신이 만든 작품의 95%가 쓰레기가 되지 않도록 노력한다고 했다. 어찌보면 5%의 걸작을 만들기 위한 집념보다 95%에 속하지 않기 위한 몸부림. 쓰레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오늘날의 그를 거장의 반열에 올려 놓았지 않았을까 싶다.
정리하자면 ‘불안은 자신을 키운다’고 볼 수 있겠다.
불안이 나를 키운다고 생각해 보자.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현실에 안주하지도 않고 만족하지도 않게 만든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한 불만족이 보다 나은 나를 만들고 있다고 믿어 보면 어떨까. 바다위의 조그마한 보트를 떠올려 보자. 파도의 일렁임에 한없이 흔들거리는 조그만 보트 말이다. 그 위에 뱃사공은 넘실대는 파도에 휘말리지 않도록 열심히 그 보트를 살필 것이다. 인생이란 바다에서 파도의 출렁임은 어떻게 보면 정말 당연한 과정일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거친 파도가 노련한 뱃사공을 만든다는 옛말도 있다. 자신에게 밀려오는 거친 파도에 정면으로 맞짱 한 번 떠보자. 피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