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대공황 전문가 ‘헬리콥터 벤’의 오판

입력 2012-06-25 10:05 수정 2012-07-0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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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성 국제경제부장

▲민태성 국제경제부장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 의장의 별명은 ‘헬리콥터 벤’이다.

그가 지난 2002년 헬리콥터에서 현금을 뿌리듯 불황에 맞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 뒤 얻은 별명이다.

버냉키 의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공황 전문가다.

대공황과 관련해 버냉키만한 인물은 없다고 말할 정도다.

버냉키는 하버드대를 수석 졸업하고 프린스턴대학교에서 교수를 지냈다.

그는 이후 백악관에서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역임한 뒤 지난 2005년 연준 의장으로 취임했다.

버냉키 의장을 이해하려면 그의 스승이 고(故) 폴 새뮤얼슨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교수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새뮤얼슨은 MIT대 교수로 재직하며 1948년 집필한 경제학 교과서 ‘이코노믹스’를 통해 시장 중심의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케인스 경제학을 접목시켜 신고전학파의 종합이론을 확립한 인물이다.

새뮤얼슨의 공로는 신고전 경제학을 집대성했다는 평가와 함께 1970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며 절정에 달했다.

버냉키 의장이 취임 이후 사상 유례없는 초저금리에 정부 지출 확대를 병행하는 극단적인 케인스적 처방을 주창한 배경에는 그의 스승 새뮤얼슨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최근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공황을 막기 위해서는 하늘에서 돈다발을 뿌려야 한다는 그가 변하고 있다.

지난 20일 버냉키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통해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peration twist)’를 연장했다.

시장은 3차 양적완화를 기대했지만 버냉키는 신중했다.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는 단기 국채를 팔고 장기 국채를 매입해 장기 금리를 내리는 공개시장조작방식이다.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직접적이고 과도한 유동성 공급없이 경기를 부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중앙은행의 본분이랄 수 있는 물가 억제에 보다 충실한 부양책이 되는 셈이다.

문제는 미국 경제의 최근 추이다.

실업률이 8%를 넘나드는 등 고용시장은 악화일로다.

미국 경제의 회복을 이끈다던 제조업은 침체 위기에 직면했다.

유럽발 경제위기가 확산하면서 인플레이션 압박은 줄고 있다.

인플레의 주범이랄 수 있는 국제유가는 80달러선이 무너지며 8개월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일각에서는 물가가 하락하면서 경제가 침체에 빠지는 디플레이션 주장이 나올 정도다.

최근 생산자물가지수(PPI)와 소비자물가지수(CPI)를 통해서도 미국 경제에 물가 압박이 크지 않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

물가 안정이라는 중앙은행의 핵심 의무를 감안하더라도 버냉키의 최근 행보를 보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나라의 경제를 좌우하는 통화정책은 선제적인 시각에서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 나라가 세계 최대 경제국인 미국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유럽이 재정위기로 휘청거리고 세계 경제의 활력소라던 중국마저 경착륙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버냉키의 신중함은 다소 지나칠 수 있다.

버냉키는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신경제 신봉자였던 그린스펀은 한때 ‘세계의 경제대통령’으로 군림했지만 시장을 내다보지 못한 금융규제 완화와 무분별한 초저금리 정책으로 글로벌 거품을 만들어낸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와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본격화한 미국발 금융위기 역시 그린스펀의 안일한 통화정책 때문이라는 비난이 거세다.

버냉키의 상황이 더욱 절박한 것은 그린스펀 시대에는 그나마 신경제에 힘입어 경기가 활황을 보이던 때라는 것이다.

작금의 세계 경제는 동반 침체 위기에 빠져 있다.

대공황 전문가라는 버냉키의 결단이 필요한 때다.

무조건적인 돈 보따리도 경계해야 하지만 적절할 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은 더욱 위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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