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ㆍ고령화 시대 건전재정을 유지하기 위해선 재정정책이 경기부양보다 잠재성장률 제고에 초점을 맞춰야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또 국제기준에 맞춰볼 때 국가부채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60%에 육박해 우리나라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이미 적색경보가 켜졌다는 분석이다.
2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는 전직 경제 고위관료, 언론인, 재정학자들이 중심이 돼 결성된 ‘건전재정포럼’ 창립 기념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주제발표자로 나선 백웅기 상명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성장률 급감,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여기에 정치권의 포퓰리즘적 공약이 더해진다면 머지않아 우리나라 재정은 위험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라며 “잠재성장률을 높여 세수를 증대함으로써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고령화만으로도 2050년 국가채무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보다 30% 이상 높은 128~136%로 악화된다”며 “입법화를 통한 재정준칙을 도입하고 50년 미래를 설계하는 장기재정전략을 세워 재정건전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는 정치권의 복지 포퓰리즘 방치로 우리나라에 재정위기가 올 경우 근로자 세후 소득이 20% 감소할 수 있다는 암울한 시나리오를 내놓았다. 옥 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2010년 2월 이후 최근까지 그리스가 다섯 차례 단행한 위기 해결 정책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시켰더니 연봉 7000만원인 근로자의 세후 연봉이 5530만원에서 4250만원으로 줄어든다는 결과가 나왔다”며 “이를 통해 평균적으로 기본급 7% 삭감, 상여금 대폭 축소 혹은 폐지, 연말정산 금액 8% 축소 등이 유발될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주제발표 후 이어진 토론회에서 구정모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의 안일한 국가채무 대응 태도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구 교수는“발생주의 회계기준을 적용했을 때 우리나라 국가부채 규모는 정부가 보증하는 현금주의 기준 규모인 324조원 보다 많은 774조원”이라며 “이 수치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60%에 육박하는 수준임을 고려할 때 이미 우리나라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이미 적색경보가 켜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우려했다.
이어 “가계부채 등 민간분야가 취약한 현 상황에서 재정건전성 제고는 국가경제위기에 대응하는 최후의 보루”라면서 “정책 포퓰리즘을 지양하고 저성장ㆍ고령화 시대에 대비해 재정여력을 키우고 공기업 부채를 적정수준으로 올리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강정 선진사회만들기연대 공동대표는 무상보육, 반값등록금 등 대선후보들의 복지공약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복지포퓰리즘이 우려되는 정치권의 선심공약을 막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즉효처방은 건전재정포럼이 각 후보에게 주요공약에 필요한 재원규모와 조달방법을 공개하도록 전문가들이 검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중장기적으로는 소득이 있는 곳엔 세금을 매기는 조세제도 선진화로 재정건전성을 지켜냐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창립식에선 발기인으로 참석한 전직 경제수장들의 재정포퓰리즘에 대한 쓴소리도 이어졌다. 재정경제원 장관 겸 부총리를 지낸 강경식 NSI 원장은 개회사에서 “과거엔 대통령이 지시한 사항도 예산에 반영하지 못한 게 많았을 만큼 적자예산 편성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금기였다”고 회고하며 “재정건전성은 한번 무너지면 다시 복원이 어려운만큼 세계 경제가 회복되고 구조적 문제의 해법이 가시화될 때까지 결코 ‘복지의 늪’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경계해야 한다”이라고 강조했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는 나라 살림을 맡은 후배 경제관료들에게 재정건전 지킴이로서의 충실한 역할을 주문했다. 그는 “현재 예산 당국을 지키는 공무원들은 청와대와 정당이 요구해도 아닐 때는 당당하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뚝심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