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양적완화부터 시작된 ‘돈풀기’ 경쟁은 유럽을 거쳐 일본에서 가속화하고 있다.
아시아 주요국들은 선진국발 ‘환율 폭풍’에 대응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기둔화에서 비롯된 환율전쟁이 장기간에 걸쳐 진행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세계 경제의 기관차’였던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집권 2기를 맞아 유동성 공급을 더욱 확대할 전망이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Fed, 연준) 의장은 조심스럽게 경기 낙관론을 밝히고 있지만 고용시장을 중심으로 중장기적인 신중론을 이어가고 있다.
연준이 2008년부터 시작한 양적완화가 내년에 4차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연준이 시장에 공급한 유동성이 연내 2조5000억 달러(약 2700조원) 에 육박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유럽중앙은행(ECB) 역시 그리스와 스페인 등 재정위기에 시달리는 중채무국을 지원하기 위해 무제한적인 국채 매입을 선언하고 나섰다.
쟝-클로드 트리셰 ECB 총재는 지난 9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국)의 국채시장 안정을 위해 무제한으로 국채매입을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역시 가만 있을리 없다. 차기 총리로 유력한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는 지난 17일(현지시간) 일본은행(BOJ)은 무제한으로 돈을 찍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버냉키 의장을 ‘헬리콥터 벤’이라고 부르는 것에 빗대 ‘윤전기 아베’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아베 총재의 발언 이후 엔화 가치는 급락했다. 79엔대에서 움직이던 달러·엔 환율은 그의 발언이 전해진 이후 최근 82엔대까지 치솟았다.
BOJ는 지난 9월에 이어 10월에도 금융완화를 단행했다. 채권 등을 사들여 시장에 돈을 푸는 기금 규모를 21조엔 확충했지만 정부의 압박으로 추가 부양책을 꺼내들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아베 총재가 지난 22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환시개입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것은 무제한적인 돈풀기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 개입은 불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금리가 사실상 제로 수준을 이어가면서 금리가 높은데다 상대적으로 경제 전망이 좋은 아시아로 글로벌 자금이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기준금리는 현재 연 0~0.25%, 일본은 0~0.1%에 그치고 있다. 영국은 0.50%, 유로존 역시 0.75% 정도다.
반면 중국의 금리는 6.00%에 달한다. 한국(2.75%) 태국(2.75%) 대만(1.875%) 역시 선진국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이는 아시아 통화의 강세는 물론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는 배경이 되고 있다.
일부 신흥국에서는 자산가격의 거품이 커지고 있다는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올해 아시아 신흥국으로 유입된 민간자금은 5000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전망됐다.
브라질이 2008년부터 급격한 해외 자본유입 대책으로 외환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것을 시작으로 신흥국들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우리 정부 역시 환율 방어를 위해 다음 달부터 외국환은행의 선물환포지션을 25% 축소하기로 했다.
시진핑 시대를 맞은 중국 또한 당장은 위안화 절상을 용인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 환율 안정에 무게를 둘 가능성이 크다.
주요국에서는 단기 투기성 거래를 억제하고자 외환거래에 부과하는 세금인 토빈세 도입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신흥국들이 이같은 움직임을 통해 선진국의 막대한 유동성 공급에 따른 영향을 막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달러를 비롯해 이른바 기축통화가 물밀듯이 밀려드는 상황에서 국가간의 합의가 없는 단기 처방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