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에어컨을 가동하는 이른바 '문 열고 냉방 영업' 행위에 대한 단속이 시작된 1일 서울 명동거리를 비롯한 전국의 유통가는 예전과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연출했다.
계도 기간 대부분 상점이나 매장이 문을 활짝 열어 놓은 채 영업을 해온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이날부터 단속에 적발되면 위반 횟수에 따라 50만원에서 최대 300만원까지 과태료가 부과된다.
◇"모두가 어려운 때, 지켜야 하지 않겠나" = 이날 서울 상권의 중심지인 명동 거리에 밀집된 30여 곳의 화장품 매장은 1∼2곳을 제외하고는 냉방 영업중 모두 문을 닫았다.
한 화장품 매장 직원은 "그동안 사용을 하지 않던 자동문을 오늘부터 쓰고 있다"며 "유리창도 깨끗이 닦고 시야를 가리는 상품은 옆으로 치워 밖에서도 안이 잘 보일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매장의 직원은 "과태료도 돈인데 안 지킬 이유가 없다"며 "매출에 얼마나 영향을 줄지 모르겠지만, 규정에 따를 계획"이라고 말했다.
부산 번화가 상가도 단속을 의식한 듯 냉방 중 대부분 문을 닫은 채 영업을 했다. 해운대의 대형 백화점 2곳은 직원이 나와 문단속 상황을 일일이 점검했고, 대형마트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해운대구청 주변과 장산역 주변 식당도 문단속에 애를 썼고 골목 곳곳의 소형 상점은 여전히 문을 열어 놓고 손님을 받았지만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돌렸다. 부산 중구 중앙동의 한 횟집은 식당 주인이 에어컨 리모컨을 들고 다니며 실내 온도를 조절하는 등 단속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부산의 신흥상권인 지하철 동래역 주변 휴대전화기 판매점은 영업장에 에어컨을 가동하면서 문 앞에 별도 가판대를 설치해 영업하기도 했다.
대구 최대 번화가인 중구 동성로도 마찬가지 상황을 연출했고 경기 수원역 앞 번화가의 의류, 신발, 화장품 가게도 대부분 출입문을 닫아둔 채 냉방 영업을 하고 있었다.
단속 첫날 일부 상인은 전력 부족 상황을 이해한다며 정부 정책에 공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대구 동성로의 의류판매장 김모(42) 씨는 "문을 열고 에어컨을 틀면 과태료가 부과된다는 건 홍보활동을 통해 이미 알고 있다"며 "모두가 어려운 때이니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춘천 번화가인 명동의 화장품매장 고모(45·여) 씨는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어 가끔 문이 열려 있으면 '왜 문을 열어놓고 영업하시냐'며 오히려 손님이 핀잔을 주기도 한다"며 "문 닫고 냉방영업을 하면 전기료도 절약되고 밖에 먼지도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단속에 큰 불만은 없다"고 말했다.
전북대에서 휴대전화매장을 운영하는 이모(43) 씨는 "전국적으로 전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고통을 분담하는 것이니 될 수 있으면 지키려 노력한다"며 "손님도 이런 점을 고려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내 온도 너무 제한했다" 불만…단속 사실 모르기도 = 본격적인 단속에 일부 상인은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부산 모 일식당 김모(48) 씨는 "내부온도를 26도 이상으로 맞춰놓으면 손님이 덥다고 아우성치기 때문에 걱정"이라며 "과태료 때문에 규정 온도를 지켜야겠지만 정부가 실내 온도를 너무 제한해 손님이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종업원 3명이 반소매 정장을 입고 영업하는 부산 서면의 휴대전화 판매점 박모(22) 씨는 "일단 첫날은 지켜보자고 해서 에어컨을 켜지 않고 영업을 하는데 내부가 찜통"이라면서 "당장 종업원이 이렇게 불쾌지수가 높은데 고객이 찾아오겠느냐"고 말했다.
부산 서면의 여성 구둣가게 이모(36·여) 씨는 "가게 특성상 문을 열어 놓고 손님의 발목을 잡는다"며 "이러다 손님이 떠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전주시 고사동의 화장품점 김모(34·여) 씨는 "그나마 문을 좀 열어 둬야 손님이 찾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영세상인은 이번 단속이 경기침체만큼이나 야속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춘천 최대 번화가인 명동의 브랜드 신발 멀티숍 김모(29) 씨도 "유동인구가 가게에 자연스럽게 들어올 수 있어야 하는데 문을 닫고 영업을 하면 신발을 정말 사려고 하는 손님만 들어온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수원역 앞에서 여성용 구둣가게를 운영하는 서모(42) 씨는 "에너지 절약을 위해 국가에서 하는 정책이니 따르긴 해야겠지만 자영업자 입장을 너무 고려하지 않은 조치 같다"고 푸념했다.
매출 감소를 우려한 탓인지 지자체 단속 예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문을 열어둔 채 에어컨을 가동한 가게도 더러 눈에 띄기도 했다.
수원역 인근의 한 화장품 전문매장은 냉방 중 문을 열어놨다. 이곳 직원은 "본사로부터 '출입문을 닫으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문을 닫아두면 손님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남 창원의 번화가인 상남동 거리 일부 가게도 문을 열어 놓은 채 냉방기를 가동하고 있었는데 옷가게 점원 이모(22) 씨도 "문을 닫고 영업하면 손님을 모으기 어려워 문을 열어뒀다"고 말했다.
단속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문을 열어 놓은 채 냉방 하던 부산 중앙동의 모 한식당 주인은 "오늘부터 단속하는 게 맞느냐. 전혀 몰랐다. 우리 같은 영세식당은 점심때가 되면 문을 열어 놓게 마련인데 앞으로 영업에 지장이 클 것"이라고 걱정했다.
전국 지자체는 지난 보름여 간의 계도기간을 마치고 이날부터 8월 말까지 문을 열고 에어컨을 가동하는 영업장과 규정 냉방 온도 26도 미만인 전기 다소비 건물에 대한 집중 단속에 들어갔다.
지자체들은 특히 전력사용 피크인 오후 2∼5시께 전담반을 투입해 집중단속에 나서 적발된 곳에 대해서는 우선 경고조치하고 재차 규정을 위반하면 과태료를 부과할 방침이다.
단속 첫날 지자체들은 상인들의 반발을 의식한 듯 영세한 업체들보다는 전력 소비가 많은 큰 매장을 중심으로 단속하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