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엄마’ 타이틀의 새 주인이 나타났다. 나문희 김혜자 그리고 고두심에 이어 시청자와 관객으로부터 국민 엄마로 인식되는 이가 있다. 최고 인기를 누리며 8월 1일 종영한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선 친구 같으면서도 속정 깊은 엄마를 맡다가 8월31일부터 방송된 KBS주말극 ‘왕가네 식구들’에선 짠순이 이면서 속물근성을 보이는 엄마를 연기한다. 9일 23일 첫 방송되는 SBS ‘수상한 가정부’에선 가사도우미를 파견하는 사무실 소장 캐릭터를 소화하며 10월 개봉예정인 영화 ‘깡철이’에선 순진무구한 바보 엄마 순이역을 표출한다. 젊은 스타도 소화하기 힘든 엄청난 작품량을 최고의 연기력으로 스펙트럼이 광대한 엄마 캐릭터를 소화한다. 중견 연기자 김해숙(58)이다.
나문희 김혜자 그리고 고두심 등 그동안 국민 엄마 타이틀을 가진 명배우들은 단일한 특성과 이미지의 어머니 색깔을 유지했다. 넉넉한 나문희, 자비로운 김혜자, 그리고 강인한 고두심 등등. 하지만 김해숙은 다르다. 억척 엄마에서부터 따스한 엄마, 바보 엄마까지 양극단을 오가는 어머니 캐릭터를 맡아 생명력을 불어넣어 시청자와 관객들로부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받고 있다.
연기의 달인, 나문희에게 가장 듣고 싶은 소리가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돌아오는 답은 놀랍게도“연기가 많이 늘었다”라는 말을 가장 듣고 싶다고 했다. 김해숙은 관객과 시청자가 인정하는 연기파 배우다. 그런데도 김해숙은 몸으로, 대사로 형상화시키는 연기가 나이가 들수록 깊이가 더해지고 세기가 정교해지며 감정이 손가락 하나의 미세한 움직임에도 배어날 정도로 진화하고 있다. 이 지점이 바로 김해숙과 다른 중견 연기자와의 변별점이자 그녀의 성공의 원동력이다.
수많은 중견 연기자 중 젊었을 때나 나이 들었을 때나 연기 스타일에서부터 연기의 세기에 이르기까지 똑같거나 연기력의 진전이 없는 사람이 적지 않다. 심지어 연기력 부족의 중견 연기자도 부지기수다. 연기력은 결코 나이와 비례하지 않는다. 고정적인 이미지나 연기 스타일에 대한 선입견이 따라다니는 경우가 많은 중견 연기자는 연기력을 위해 젊은 연기자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리고 노력을 기울여야만이 “연기가 늘었다”는 말을 겨우 들을 수 있다.
김해숙은 1974년 MBC탤런트로 연기를 시작한 이래 KBS, MBC, SBS 방송 3사의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빼어난 연기를 보여 왔다. 작품을 하며 나이 들어갈수록 김해숙의 연기력은 진화하고 발전한 것이다. 그리고 그 연기력은 바로 땀과 노력의 산물이었다. “연기자로서 필요한 목소리를 갖기 위해 담배를 피웠다”는 김해숙의 말에서 연기력을 위해 온몸을 던지는 노력의 문양을 엿볼 수 있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수많은 여자 연기자들의 잠을 자는 장면에서의 모습은 그야말로 관객과 시청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왜냐하면 잠자리에 들 때에도 일상적인 잠자리와 달리 화려한 화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리얼리티나 캐릭터의 성격 보다는 배우가 예뻐 보이려고만 하는 행태에서 나온 결과다.
김해숙의 잠자는 장면을 한번이라도 본 시청자와 관객이 있다면 다른 여자 연기자와 다른 모습을 발견한다. 잠자리에 들 때는 화장을 완벽하게 지우는 등 세심한 부분에서도 리얼리티를 살리려고 노력하는 연기자가 바로 김해숙이다. 이 때문에 “김해숙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정한 연기를 하는 연기자”라고 선배 연기자인 이순재가 극찬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김해숙 선배님은 정말 존경할만한 훌륭한 연기자라고 생각합니다. 매순간 좋은 연기를 하기위해 온몸을 던지는 것을 촬영장에서 지켜보면서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는 후배 연기자 남규리의 존경을 받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진화하는 연기력과 함께 편안한 카리스마와 동료와 스태프에 대한 자상한 배려는 김해숙의 성공의 또 다른 비결이다. “김해숙 선배님처럼 되고 싶다. 너무 기가 센 여배우, 남들을 불편하게 하고 대하기 어려운 배우보다는. 나이가 들어서도 편안한 카리스마가 있는 김해숙 선배님 같은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는 박하선의 언급과 “선생님(김해숙)은 뵐 때마다 제게 한결 같이 밥은 먹었니, 잘 챙겨 먹고 다니니 라고 챙겨주신다. 내겐 그렇게 말을 건넬 때마다 진심이 느껴져 너무 따스함을 느끼곤 한다. ‘우리 형’ 이후 많은 시간이 흘러도 ‘우리 빈이’ 하며 아껴주시고 힘든 일 있을 때 제일 먼저 걱정해주시는, 제게는 어머니 같은 선생님이다. 항상 깊은 감사드린다”는 원빈의 말은 김해숙의 화면밖의 생활과 자세를 보여준다. 이러한 편안한 카리스마와 남에 대한 배려가 수십명에서 수백명이 함께 공동작업을 해야 하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김해숙을 최고의 연기자로 만드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양한 문양의 엄마 캐릭터 소화, 뛰어난 연기력, 편안한 카리스마 그리고 남다른 배려로 국민 엄마 타이틀을 거머쥔 김해숙. “‘국민엄마’란 호칭은 무척 영광스러워요.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위대한 연기는 바로 엄마 연기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 모든 엄마를 표현하는 것이 내 연기의 목표에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엄마 연기가 어렵고 책임감이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다양한 엄마를 연기로 드러내는 연기자의 삶 자체가 너무 좋아요.” ‘2013 올해의 영화상 여우조연상’‘2012 대종상 여우조연상’‘2010 코리아드라마페스티벌 어워즈 여자조연연기상’‘2009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2005 KBS 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김해숙의 연기력을 입증하는 증좌다. 하지만 부족하다. 왜냐하면 탁월한 연기력으로 드라마와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고 인기를 견인하고 그리고 연기 하나만으로 무한 감동을 선사하는 김해숙은 놀랍게도 KBS, MBC, SBS 방송3사의 연기대상을 그리고 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김해숙씨가 정말 연기대상을 한 번도 타지 못했어요. 그렇게 연기 잘하는 분이 연기대상이나 여우주연상을 받아야 되지 않나요.”수많은 시청자와 관객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