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실패의 경험을 공유하라- 한지운 산업부장

입력 2013-10-25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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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양덕준 사장을 만났던 기억이 있다. 이미 너무나 잘 알려져 있지만 양덕준 사장이 누군가. MP3플레이어 하나로 전 세계 시장을 장악한 ‘아이리버 신화’를 만들어낸 그다.

한때 보유 주식 평가가치만 약 1700억원에 달할 정도였던 양 사장은 당시 ‘아이팟’으로 상승세를 탄 애플의 가장 큰 경쟁 상대로, 또 기업인 모두가 닮고 싶어하는 성공한 스타 벤처인이었다. 미국에 스티브 잡스가 있다면 한국에는 양덕준이 있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2004년 세계 시장 점유율 25%로 1위를 차지한 아이리버(당시 레인콤)는 아직도 전 세계 MP3플레이어의 역사다. CD플레이어 광픽업 모듈을 만들었던 회사를 MP3 CD플레이어 기업으로 탈바꿈시킨 뒤 디자인 경영을 국내 최초로 도입, 파격적인 디자인의 플래시메모리 방식 MP3플레이어로 세계 시장을 휩쓸었다. 이는 국내 IT벤처가 세계 소비자 시장을 장악한 첫 사례다. 세계 최초,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는 모두 그만의 것이었다. 제품에 열광한 소비자들은 스스로 홍보대사를 자처했다.

그러나 2010년에 만난 양덕준은 실패한 벤처인이 되어 있었다. 당시 양 사장은 애플과의 경쟁에서 밀려 추락한 아이리버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떠난 뒤였다. 민트패스를 창업해 웹 기반의 커뮤니티 플레이어인 ‘민트패드’를 내놓았지만 너무도 앞선 콘셉트 때문에 판매는 쉽지 않았다. 결국 많은 직원들을 떠나보냈고 30여평 남짓의 작은 사무실로 민트패스를 이전했다. 문전성시를 이뤘던 기자들의 발길도 끊어진 때였다.

그곳에서 만난 양 사장은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고 말을 할 때도 발음이 정확치 않을 정도로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다. 오랜 투병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회사가 위기를 겪는 상황인 만큼 직접 몸을 끌고 회사에 나온 것으로 보였다.

인사와 짤막한 안부만 묻고 나가려 하자 양 사장이 앉으라고 손짓을 한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기자를 만났기 때문일까.

그는 아이리버 시절을 회상하며 자신의 실책과 아쉬움에 대한 회한을 풀어놓았다. 예쁜 제품만 만들려고 했던 것은 소비자가 원하는 진짜 디자인이 아니었다는 말, 새로운 시장을 한 발 더 앞서 개척하지 못했다는 말 등, 그의 이야기는 1시간이 넘도록 이따금 끊어지며 힘겹게 이어졌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앞으로 자신의 행보에 대한 바람이었다.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어. 우리나라 벤처업계에 도움이 되는 일, 경험을 공유하고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것. 이게 내게 남은 마지막 소임인 것 같아. 그런데 건강이 이래서 가능하지는 못할 것 같아 안타까워.”

기업인의 경험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벤처기업은 물론, 연륜이 짧은 중기·중견기업들은 대기업처럼 인적, 물적 시스템을 통한 노하우를 축적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벤처기업이 중소·중견기업으로, 또 중소·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업인의 경험에만 의존하는 현재의 상황을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실패를 경험으로 승화해 한 발 더 올라서는 기업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단 한 번의 실패로도 추락한다.

성장사다리는 곧 우리경제가 가진 ‘경험의 승계과정’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이 때문에 미래창조과학부 등 정부부처와 유관기관이 최근 벤처 1세대의 경험을 전수하는 멘토단을 구성한 것은 의의가 크다. 5년 이상 운영한 경험이 있는 벤처 1세대 기업인을 선발해 멘토단을 구성하고, 이들이 대학 벤처 동아리와 청년 창업 초기 기업에 창업과 경영 컨설팅을 지원한다는 것이 골자다. 여기에 더 나아가 현재 성공한 기업인 뿐 아니라 실패했더라도 수많은 경험을 쌓은 기업인들로 좀 더 대상을 확대하는 것도 바람직한 길일 것이다.

잠시 양 사장 얘기로 돌아가자. 2000년 초 미국 업체와 ODM(제조자설계생산) 관계가 깨질 때다. 양 사장은 ODM 파트너를 새로 찾을지, 독자 브랜드사업에 뛰어들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직원들은 모두 안정된 파트너를 찾자고 브랜드 사업을 반대하는데, 나는 우리 상표를 달고 세계로 가고 싶어. 한 기자도 지금 반대하고 있지만 두고 보라고”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후 그는 ‘아이리버’라는 브랜드를 내놓고 세계로 나갔다.

삼성, LG 브랜드는 해외에서 넘쳐나지만 우리 중소·중견기업의 브랜드는 점점 찾기 어려워지는 시대다. 벤처 1세대의 경험에 ‘용기’를 더해 국내를 넘어 세계로 힘찬 한 걸음을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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