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160개국에서 번역되고 성경과 함께 가장 많이 읽힌 명작. 바로 앙투안 생텍쥐페리가 쓴 ‘어린왕자’다. 여기에 그 유명한 ‘길들임’의 철학이 나오는데 ‘어린왕자’는 지금까지 1억 부 이상 팔렸다고 한다. ‘어린왕자’를 독점 출판하고 있는 프랑스의 갈리마르 출판사는 지금도 매년 평균 35만 부를 찍어내고 있다.
생텍쥐페리는 네 살 때 부친을 여의었는데 귀족인 외할아버지와 친척의 저택에서 번갈아 더부살이를 하면서 유년시절을 보내게 된다. 외할아버지는 라 몰르(la Mole)라는 영지와 저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저택 앞에는 정원이 잘 가꿔져 있고 후원은 숲이 우거졌다. 어머니는 커다란 두 개의 새장에 새들을 길렀다. 생텍쥐페리도 나무에 오르면서 다람쥐, 토끼, 생쥐, 달팽이들과 장난하고 기르고 길들였다. 어머니 마리는 아들의 삶과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압축하고 있다. “어린아이는 벌레를 보면 밟지 않으려고 길을 돌아서 다녔습니다. 산비둘기를 길들인다고 전나무 꼭대기까지 오르내렸지요. 사막에서는 영양들을 길들였습니다. 그리고 무어인들을 길들였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는 계속해서 인간을 길들이고 있습니다.”
유년기에 시작한 동물 길들이기는 그가 20대 후반 조종사로 취직해 사하라 사막에서 근무할 때로 이어진다. 그는 요새에서 영양들이나 카멜레온, 사막의 작은 여우 등을 길동무로 삼고 길들이기도 했다. 집과 사막에서 길들이기의 기억으로 쓴 게 바로 ‘어린왕자’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생텍쥐페리에게 문학 정신을 키워준 공간은 귀족인 선조들이 살던 저택, 즉 ‘집’이었다.
“제가 이제껏 알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좋고 가장 평온하고 가장 정겨운 것은 바로 생모리스 집 윗방에 있던 작은 난로입니다. 살면서 그 난로만큼 제 마음을 놓이게 했던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밤에 잠에서 깨어보면 난로는 마치 팽이처럼 팽글팽글 돌아가면서 벽에 훈훈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지요.” 그는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고 있다. 이런 아늑한 기억을 가진 아이는 집만 생각하면 행복한 기분이 들 게다.
생텍쥐페리 가는 가문의 이름이 베르사유 궁의 십자군 실에 등재될 정도로 1000년 역사가 훨씬 넘는 참으로 유서 깊은 가문이다. 생텍쥐페리는 언제나 유년시절을 보낸 집에 대한 그리움과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간직하며 살았다. 그가 마지막 비행을 한 곳도 바로 그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고향이었고 그 이후 실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