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주한미군방송(AFKN)이 컬러방송을 시작하자 우리 정부는 고민에 빠졌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후반 컬러TV를 개발해 수출까지 하고 있었지만, 정작 국내 컬러방송 개시는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이웃인 일본은 1960년, 필리핀은 1966년부터 컬러방송을 시작했다.
연합뉴스가 26일 입수한 1977년 4월의 AFKN 컬러방송 관련 문화공보부 당국자와 미8군측의 회의록을 보면 당시 컬러방송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잘 드러난다.
이 회의에서 문공부 관계자는 AFKN의 컬러방송에 대해 "우리 국민이 총화 단결해 경제 건설에 열심히 매진해야 하는 현실에 유익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된다"며 방송 중단을 요청했다.
주한미군을 대상으로 한 방송이지만 국내 일부 계층이 시청하던 AFKN의 컬러방송 개시는 경제적 여건이 아직 부족한 국내에 컬러방송 도입 여론을 자극할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문공부는 "국내 컬러방송 실시에 따른 경제적 재원은 가능하나 보다 중요한 것은 현 상황에서 경제 건설이 더 시급하다"라며 "농어촌에 흑백TV 보급이 완전히 실현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우리 국민도 현재 흑백 TV 방송에 만족한다"고 밝혔다.
또 정부는 국내 컬러방송 시점을 국민 연소득 1천500달러를 넘기는 1980년대 초반으로 잡고 있으니 AFKN의 컬러방송도 이에 맞춰서 시작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컬러방송 추진 방침을 이미 1973년에 한국 정부에 통보한 주한미군은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컬러방송 비율을 계속해서 늘린다.
1977년 8월 다시 미군측과 마주 앉은 정부는 "우리나라는 아직 선진국같이 대량 소모 경제 단계에 있지 않다"며 "앞으로 4∼5년이 국가 안보에 대단히 중요한데, AFKN이 컬러방송을 적극화할 경우 우리 국가건설과 방위노력에 지대한 장애를 초래할 것"이라고 재차 설득에 나섰다.
정부는 컬러방송을 하되 1일 2시간 내 정훈교육 목적으로만 해달라는 타협안을 AFKN에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AFKN은 예정대로 컬러방송을 전면적으로 시행했고, 우리나라는 신군부 세력이 들어선 이후인 1980년 12월에 총천연색 방송을 처음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