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가 도입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도입 며칠 전부터 온라인 서점들의 홈페이지에는 오래된 책을 조금이라도 싼 가격에 구입하려는 이용자들이 몰려들어 일부 온라인서점의 홈페이지가 마비되는 사태도 있었다. 서점이나 출판사들도 도서정가제 도입 전에 재고를 털어내기 위해 대폭적인 할인으로 고객을 유인했음은 물론이다.
도서정가제가 도입된 지 며칠 되지 않아 효과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도서정가제가 어느 누구나 동일하게 합리적인 가격에 책을 구입하도록 한다는 취지는 분명 긍정적이다. 이에 반해 옷은 세일을 해서 싸게 팔아도 되는데, 유독 책만 싸게 팔면 안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소비자들이 많다. 책 값이 뛰어 소비자 부담만 가중할 것이라는 반대 의견도 거세다.
이 같은 반대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문화체육관광부가 도서정가제를 도입하면서 내세운 논리 중 하나는 외국 사례다. 도서정가제는 프랑스가 150년 전 도입해 지금까지 시행하고 있으며, 유럽을 중심으로 15개 나라에서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는 정가의 5%까지만 할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외국 정부가 이처럼 도서 가격을 규제하는 이유는 책이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는 인식에서다. 책은 국민들의 의식수준·교육과 맞물려 있는, 국가가 책임져야 할 문화재 또는 공공재라는 것이다. 고등교육까지 의무교육을 해야하듯이 책 또한 정부가 나서서 규제해야 할 대상이라는 의미다.
프랑스가 이 제도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여럿 있다. 프랑스 국민 1명이 1년에 읽는 독서량은 평균 11권이 넘을 정도로 세계 수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게 큰 이유 중 하나다. 우리나라는 평균 2.7권에 불과하다. 물론 프랑스가 독서량에서 상위권을 유지하는 게 오로지 도서정가제 때문만은 아니지만, 올바른 출판문화와 건전한 도서 유통구조를 확립하는 데 일조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프랑스는 또 전통서점이 폐업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오래전부터 3500곳이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지난 10년간 전통서점 1200여곳이 문을 닫았다.
정부가 도서정가제 도입을 강행한데는 자금력을 내세운 온라인 서점과 대형서점의 가격 파괴전략을 막고, 죽어가는 동네서점을 살려 독서의 대중화를 꾀하자는 취지가 담겨있다. 여기에 할인을 전제로 정가를 책정해오던 관행에 브레이크를 걸어, 책 값에 끼여있던 거품도 거둬낼 수 있을 것이란 계산도 있다. 궁극적으로는 ‘착한 책값’ 정착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시스템이 나오면 혼동이 있고, 기존 것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모든 제품마다 제조와 유통 프로세스가 있기 마련이라 한 곳에 이득이 간다면, 다른 곳은 손해를 보게 된다. 그것을 선택하는 기준은 국민이다. 국민에게 손해가 아닌 이익으로 돌아오는 제도가 있다면 도입하는 게 우선이다.
이번 도서정가제를 놓고 얼마전 이동통신 분야에 도입했던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에 빗대 ‘책통법’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단통법이 분명 단점도 있지만, 국가 전체적으로 가계통신비를 낮추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다는 통계가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책통법’이라는 용어는 너무 여론 몰이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합리적인 통신요금 정착을 위해 단통법이 더 보완돼야 한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통신 요금에 여전히 거품이 끼여있듯이, 도서가격에도 거품이 형성돼 있는 게 현실이다. 일부 출판사와 서점이 판매부수·인기도서를 조작하면서, 도서문화와 유통구조를 왜곡시켜 이익을 독식하고 있는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 도서가 문화재·공공재라는 점에서 도서정가제의 단점이 발견되면 다시 보완하고, 더 나아가 국민을 ‘호갱’으로 만드는 도서시장 구조는 반드시 고쳐야 한다. 일부 업체들이 괘씸해서기도 하지만, 국민 모두가 책을 더 가까이 접하게 만들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