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가구당 월 평균 소비는 258만원에 그쳐 월 평균 97만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가계수지 흑자는 급격한 소비 감소에 따라 나타나는 불황형 흑자이다. 중요한 사실은 가계부채의 증가와 가계수지 흑자가 결부하여 소비 감소를 가속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경기침체가 심화하면 경제는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을 겪는다. 이미 우리 경제는 2년째 물가상승률이 1%대 이하이다. 경제가 디플레이션의 함정에 빠질 경우 투자와 소비가 맞물려 감소하는 악순환을 형성하여 스스로 무너진다.
더욱 큰 문제는 가계부채의 위험도가 높은 것이다.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진입하면 가계부채는 곧이어 연쇄 부도위기를 낳는 폭발성을 갖고 있다. 우선 우리나라 가계의 부채상환 능력이 극히 낮다. 지난해 말 현재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이 160.7%나 된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의 평균 135.7%에 비해 현격히 높다. 여기에 부채의 증가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 2009년도에서 2013년도까지 5년 동안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해마다 평균 5.6%%씩 증가했다. 이에 비해 그동안 경제성장률은 평균 3.2%밖에 안 된다. 가계부채가 국민소득보다 1,75배나 빠르게 증가한다는 뜻이다.
설상가상으로 생계형 가계부채가 많다. 한국은행이 전국 69개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10~11월 중 신규 취급한 주택담보대출의 용도가 생활자금 18.2%, 차입금상환 17.5%, 전월세자금 3.7%, 사업자금 4.9% 등이다. 이런 상태에서 정부와 한국은행은 경기활성화를 위해 재정확대와 금리인하 정책을 펴고 있다. 이미 정부는 46조원의 재정자금을 풀고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2%까지 내렸다. 그러나 경기활성화 효과는 미미하다. 대신 가계부채가 풀린 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눈덩이처럼 늘고 있다.
그렇다면 가계부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우선 필요한 것이 가계부채의 증가 속도를 줄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금융기관들은 대출심사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대출의 타당성과 상환 가능성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금융기관과 가계의 동반 부실화를 재촉하는 대출은 최소화해야 한다. 한편 금융기관은 가급적 대출금리를 내리고 상환기간을 연장하여 가계부채의 상환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추면 금융기관들은 대출금리보다 예금금리를 더 큰 폭으로 내려 예대 마진을 늘리는 것이 보통이다. 생계형 한계대출자들에게는 상환유예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고금리 대부업체나 사채업자 대출로 하루하루 사는 이들은 그대로 두면 쓰러질 수밖에 없다. 사회복지 차원에서 지원책을 마련하여 빚더미에서 벗어나게 하고 새로운 삶의 길을 찾게 해줘야 한다.
가계부채 대책이 임기응변으로 끝나면 안 된다. 가계부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가계부채도 줄이고 경제도 살리는 일석이조의 정책이 바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일자리가 늘면 자연히 가계소득이 늘어 부채상환 능력이 높아진다. 또 산업활동이 활성화하여 경제가 성장동력을 찾는다. 따라서 정부는 고용창출을 위한 재정지출을 최대한 늘려야 한다. 취로사업이라도 다시 벌여 정부가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야 한다. 일자리 나누기 정책도 절실하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양극화가 심하다. 실업자들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거리를 헤맨다. 임금상한제와 근로시간 단축을 강화하여 일자리를 대폭 늘려야 한다. 무엇보다도 체질 개선을 통해 경제의 일자리 창출 능력을 높여야 한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투자환경을 개선하고 연구개발 투자를 늘려 경제의 새로운 성장체제를 구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