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담배 1갑(20개비)당 4천500원이 되면서 담배부담금으로 불리는 건강증진부담금도 덩달아 껑충 뛴다. 올해까지만 해도 1갑당 354원의 건강증진부담금이 붙었다. 하지만 새해부터는 1갑당 487원 오른 841원의 담배부담금을 매긴다. 그만큼 건강증진부담금으로 조성한 건강증진기금도 증가한다.
보건복지부는 2015년에 총 3조2천762억원의 건강증진기금을 조성할 계획이다. 2014년보다 무려 40.5% 증가한 규모다. 복지부는 이 가운데 기금운용경비 등을 빼고 기금사업비로 2조7천189억원을 사용하기로 했다.
이 기금은 조성 목적대로 쓰일까? 건강증진기금은 1995년 제정한 국민건강증진법에 근거해 담뱃세를 재원으로 1997년부터 조성됐다. 흡연자를 위한 건강증진 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하는 데 필요한 정책자금을 확보하려는 목적에서였다.
따라서 재정원칙으로 따지면 담배부담금은 부담금 납부의무자인 흡연자의 집단적 이익을 위해 우선 사용해야 한다. 담배부담금이 재정조달 목적의 헌법적 정당성을 인정받고, 집단 효율성 요건을 충족하려면 어디까지나 흡연자를 위해 일차적으로 투입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흡연자는 2015년에도 자신이 낸 세금으로 조성된 건강증진기금 사업의 혜택을 기대만큼 누리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애초 목적보다는 다른 용도로 더 많이 쓰는 쪽으로 예산을 편성한 탓이다.
복지부가 짠 2015년 건강증진기금의 사업구성을 보자. 기금 조성 본연의 목적인 건강증진사업에는 7천707억7천500만원(28.3%)밖에 투입하지 않는다. 이 중에서도 순수하게 국가금연지원서비스 사업에 쓰는 예산은 1천475억원에 그친다. 물론 2014년 113억원보다는 1천205% 급증한 것이긴 하다. 하지만 전체 기금 증가액보다는 턱없이 적다. 복지부는 이런 금연사업 예산을 내년에 청소년 흡연예방과 여성 금연지원, 저소득층 흡연치료 지원사업 등에 주로 쓰기로 했다.
그 대신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지원하는데 2015년 기금사업예산의 절반 이상인 55.9%(1조5천185억3천만원)를 쓰기로 했다. 기금의 설치목적과 부합하지 않은 연구개발(R&D)과 정보화 및 의료시설 확충사업 등에도 3천482억800만원(12.8%)을 사용하기로 했다.
이처럼 건강증진기금이 목적에 맞지 않게 사용됨에 따라 적절성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건강증진기금을 하루빨리 건강증진 사업중심으로 재정립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흡연자들이 부담한 담배세금을 구체적으로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먼저 명확히 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그래야만 담뱃세 인상에 따른 흡연자의 조세저항을 막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보건사회연구원 김혜련 연구위원은 "사회적 합의를 거쳐 기금을 우선 사용해야 할 분야를 명시하는 등 기금예산의 배정순위와 배분기준을 법률로 규정해 기금사용의 적절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의료연구원(보의연) 이성규 박사도 "흡연자들을 위해 기금이 적절하게 사용되는지에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담뱃세 인상으로 발생한 세금을 흡연자의 건강증진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세부적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기금목적에 맞지 않는 사업은 일반회계로 이관하는 등 기금의 고유목적인 건강증진사업의 투자비중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 국민건강보험을 지원하는 데 주로 쓰이는 기금을 의무적으로 흡연자들의 의료비에 먼저 충당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나아가 "담배부담금으로 건강보험을 지원하는 관행을 없애고, 별도의 '흡연 구제기금'을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국회입법조사처는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