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새해 벽두부터 전주한옥마을은 북적입니다. 동장군의 위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죠.
전주한옥마을은 전북 전주 완산구 풍남동과 교동 일대 29만8260㎡ 일대에 조성됐습니다. 전체 건물 774동 가운데 603동이 한옥입니다. 전주의 자랑이자 대표 관광지로 떠오른 이곳은 한해 관광객만 500만명 이상에 달할 정도입니다.
한옥마을 뒤편의 높은 언덕, 오목대에서 바라보면 한눈에 전주한옥마을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평지에 펼쳐진 기와지붕 마을, 멀리 보이는 고층 건물과 대조된 이색적인 풍경 말이죠.
◇ 일제강점기 시작된 역사…반외세 목소리에 하나둘 한옥 들어서
한없이 평화로워 보이는 전주한옥마을. 사실 이곳은 아픈 근대사와 얽혀있습니다.
전주한옥마을의 시초는 일제 침략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성곽이 있던 시절 일본인들은 성곽 밖에 살았습니다. 엄격한 신분제도에 따라 천민과 상인들이 머무는 지역에 거주지가 제한된 거죠.
그러나 1911년 전주성 풍남문 일대를 제외하고 성곽이 모두 철거됩니다. 근대화라는 명목 하에 일본인들이 조선의 흔적을 없애나간 거죠. 그 결과, 일본인 거주지가 전주 시내로 물 밀듯 들어오며 상권도 하나씩 잠식돼 갑니다. 조선 태조 이성계를 모시는 경기전과 유서 깊은 전주향교 코앞까지 일본인이 손길을 뻗쳐옵니다.
이에 전주 사람들은 반발합니다. 그리고 일대에 하나둘 한옥을 짓기 시작합니다. 다다미로 대표되는 일식 건축에 대한 반발이자, 민족 자긍심의 표현이었습니다. 그 규모는 하나둘 늘어 약 800채까지 늘어나며 큰 마을이 형성된겁니다.
◇ 동학농민운동 '얼' 서린 풍남문…천주교 순교자를 기린 전동성당
초입에서 전주한옥마을을 지키는 풍남문에도 근대사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풍남문은 조선 시대부터 전주를 지켜온 전주의 상징입니다. 높직한 화강암 기단부 위에 2층의 누각을 올려진 아직도 무게감과 안정감 한껏 뽐냅니다.
이곳은 동학농민운동의 얼이 살아있는 곳입니다. 1894년 1월 고부 관아 점령을 시작으로 봉기한 농민군이 4월 7일 황토현에서 관군을 격파하고 정읍, 태인, 금구를 거쳐 4월 27일 전주성을 함락했습니다. 동학 농민전쟁 사상 최대의 승리를 기억하고 있는 거죠.
전주의 랜드마크인 전동성당엔 조금 다른 사연이 깃들어 있습니다.
전동성당의 초안은 프랑스 선교사 보두네 신부가 계획했습니다. 축조는 중국인 기술자 100여명이 맡았습니다. 20세기 초, 마땅한 재료가 없던 시절 벽돌은 직접 구워서 썼고, 주춧돌은 1909년 전주부의 허가를 얻어 남문 밖 성벽의 돌을 가져다 썼습니다.
이는 순교자를 기리기 위해섭니다. 1791년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 권상연. 1801년 유항검과 동료 순교자들의 능지처참과 참수를 지켜보았던 그 성곽의 돌들로 다시금 성당을 만든 것이죠.
한 맺힌 포교의 역사가 서려서일까요. 붉은 벽돌로 지어진 성당은 건물의 외형이 아름답고 고풍스럽습니다. 전동성당은 명동성당, 대구 계산성당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성당의 하나로 꼽힙니다. 호남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건축물로도 유명합니다.
아픔과 한이 서려 있는 전주한옥마을. 이와 함께 조선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모시고 있는 경기전,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전주사고, 전주향교가 남아 옛 정취를 간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