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밀조밀 언덕을 따라 난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예술가들의 흔적이 살아있는 골목이 있습니다. 작가들의 흔적이 곳곳에 서린 골목과 언덕배기를 넘어 꼭대기에 이르면 저 멀리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죠.
언뜻 떠올려보면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이 떠오릅니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한다는 명소로 익히 알려진 곳으로 말이죠.
그러나 이곳은 서울에
2015년 새해 벽두부터 전주한옥마을은 북적입니다. 동장군의 위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죠.
전주한옥마을은 전북 전주 완산구 풍남동과 교동 일대 29만8260㎡ 일대에 조성됐습니다. 전체 건물 774동 가운데 603동이 한옥입니다. 전주의 자랑이자 대표 관광지로 떠오른 이곳은 한해 관광객만 500만명 이상에 달할 정도입니다.
한옥마을 뒤편의 높은
수풀이 우거졌다는 데서 이름 붙여진 신림(新林)동. 무성히 관목들이 뒤덮었던 자리는 어느덧 먹거리, 패션, 주점 등의 상권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순대촌으로 유명한 신림역 상권은 몰려드는 인파로 365일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저가 먹거리 상권과 유흥가라는 한계는 있지만, 일일 유동인구만 약 14만명에 이르는 서울 서남부 최대 상권으로 꼽힙니다.
파이가
홍대 앞 거리. 21세기 젊은 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곳입니다. 그 덕에 각종 공연장과 개성있는 차림새의 젊은이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한류의 원조를 찾아 서울에 온 벽 안의 외국 젊은이들도 길거리에서 마주칠 수 있죠.
그만큼 곳곳에는 활력이 넘칩니다. 골목골목 있는 맛집과 소형공방부터 대로변의 대형쇼핑몰, 그리고 숨은 그림 찾듯 이곳
1974년 8월 15일. 수도권의 혈관이라 불리는 지하철이 처음 개통한 날입니다. 이후 40여년 간 지하철역은 서울 도심 곳곳에 자리 잡게 됐죠.
한국의 첫 지하철은 서울시 1호선(구 종로선) 서울역~청량리 7.8㎞, 9개역, 전동차 60량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수십년의 세월과 함께 9개 노선(중앙선 제외)에 300개역 이상의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겨울연가','대장금' 등 미디어에서 시작된 한류 열풍은 패션, 뷰티, 음악, 출판, 식음료까지 확산 중입니다. 지역적으로 아시아에 국한됐던 것도 이젠 옛말이 될 정도죠.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출판·방송·광고·게임 등 콘텐츠산업 매출규모가 케이팝 등 한류열풍에 힘입어 2020년에는 올해보다 31.6% 늘어난 최대 95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1911년 10월 15일, 경원선 기차 소리와 함께 개관한 창동역은 한국 현대사의 산증인입니다. 일제의 병참물자를 나르는 철로에서 서울시민의 발이 된 1호선과 4호선 지하철 개통까지 그 역사를 간직하고 있죠.
현재 창동역은 지하철 환승역이자 경기 북부권 철도 이용객의 교통 중심지로 거듭났습니다. 하루평균 유동인구만 7만명, 배후 인구만 40만명에 달합
'한국의 실리콘밸리'라고 하면 경기 성남 판교 테크노밸리와 구미공단 등이 생각나지만 선뜻 한 군데로 콕 집어 떠올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만큼 IT, 전자기기 제조업체가 모인 곳을 상징하는 곳이 없다는 방증이죠.
그러나 1980년대까진 한국의 실리콘밸리라 하면 딱 한 곳이 꼽혔습니다. 바로 서울 종로구 종로3가 변에 있는 세운상가입니다. 이곳은 1987년
1916년 경성 최초의 간이비행장이 생기며 역사 속에 등장한 여의도.
1970년 마포대교 개통과 함께 본격 개발이 시작된 후 1977년에는 증권거래소가 들어서며 한국 증권 역사의 중심으로, 국회의사당과 방송사들까지 들어선 이후에는 명실상부한 한국 현대사의 중심으로 들어섰습니다.
2000년대까지도 그 맥은 이어져 기업들의 본사와 활력 넘치는 증권과 방
많은 이들이 오가는 골목 귀퉁이. 약 5평 남짓한 공간에 지난주까지 있던 카페는 문을 닫았습니다. 누가 봐도 목 좋은 곳이지만 가게는 간판만 덩그러니 남겨진 채 방치돼 있죠.
조금씩 활력을 잃어가는 상권. 이곳은 '신림동 고시촌'이라 불리는 서울 관악구 대학동입니다.
로스쿨제도가 도입되고 각종 고시는 폐지되는 여파를 그대로 맞은 것이죠. 그리고 지난해
서울 시민의 허파로 불리는 북한산. 수도권 유일의 국립공원이란 메리트 덕에 한 해 방문객 수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2009년에는 한해 방문객이 863만명에 달해 단위면적 탐방객이 가장 많은 국립공원으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죠.
자연의 여유로움만을 간직할 것만 같은 북한산. 그러나 최근 북한산은 개발 열기에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고도제한, 개발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인 1914년. 서울 용산연병장(현 미군기지) 일대는 인파로 들썩입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대중들에게 서구식 경마인 '조선경마대회'가 열렸기 때문이죠. 말과 기수가 하나돼 온전히 시합에만 열중하는 모습에 10만의 관중은 열광했습니다.
100년이 지난 현재, 역사에 기록될 만큼 용산 일대를 뒤덮었던 경마에 대한 열기는 정반대로 변
서울에 1949년에 편입된 마포구 상암동.
역사 속에서 이곳은 언제나 변두리였습니다. 기록조차 찾기 힘듭니다. 조선 시대 한성부 북부에 속한 어느 한적한 동네로 기록된 게 전부입니다. 일본강점기엔 관동군의 대대 병력 주둔지, 현대사에서는 난지도로 대표되는 매립지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게 사실입니다만, 2014년 현재는 사뭇 달라졌습니다.
악취가
'18년, 20년, 27년'
사람으로 치면 '이팔청춘'에 해당하는 이 연도들은, 대한민국 아파트엔 평균 수명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18년이 넘어가면 배관에 문제가 생기고 20년이면 균열이, 27년이면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이 된다는 것이죠. 실제 대부분의 주택은 이르면 건축된 지 15년, 늦어도 20년이 되면 리모델링과 재건축을 하는 게 '일상다반사'입
10대 청소년부터 50대 중장년까지 '강남'을 떠올리면 나름의 추억이 있을 겁니다.
1974년 들어선 뉴욕제과를 필두로 싸이의 2012년 강남스타일까지 동시대의 젊은이들을 한데 끌어모으는 곳이기 때문이죠. SPA 브랜드부터 명품샵, 각종 음식점과 새로운 퓨전 맛집까지 한 시대의 트렌드를 '강남'이 주도한다는 데는 이견을 제시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올해로 69주년을 맞는 8.15 광복절.
누구에겐 해방의 날이지만 어떤 이들에겐 지우고 싶은 패배의 날로 기억될 겁니다. 적어도 우리로서는 억압된 식민시대를 끝내고 새 역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기념비적인 날입니다. 그만큼 역사적으로 뜻깊고 상징적인 날입니다.
그런데 광복절을 하루 앞두고 일본군 관사가 일반에 개방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8.15
'한국의 맨해튼' '한국 정치의 중심'
서울 여의도에 붙는 수식어는 대단하죠. 그만큼 여의도는 한국의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입니다. 한국 최초의 비행장이 있던 덕에 윤복희의 미니스커트가 처음 발 디딘 곳도 여의도지요.
21세기가 된 지금은 더할 나위 없습니다. 국회의사당, 한국거래소 등을 필두로 각종 금융사와 증권사, 대기업의 본사까지 있는
한땐 고급주택으로 불렸던 아파트. 이젠 서울시민의 44%가 거주할 정도로 일상적인 주거형태가 됐죠.
어딜가도 쉽게 볼 수 있는 이 아파트들은 1980년대 말부터 불어온 재개발 열풍 탓에 수명이 상당히 짧습니다. 10년이면 리모델링, 20년이면 재건축 얘기가 오가는 게 일상다반사가 된 지 오래죠.
물론 최근 노후화된 아파트를 중심으로 리모델링, 증축
'판자촌'. 한때 서울 도심 가득했던 그 이름이 이젠 낯설어졌죠?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개발붐과 함께 사라져갔는대요. 그나마 남은 서울의 판자촌들 역시, 대부분 재개발을 앞두고 있어 수년내로 사라질 예정입니다. 그런데 유독 개발 계획조차 수립되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아니, 있던 재개발 계획도 사실상 무산된 곳이란 표현이 맞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