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촬영현장에선 감독이 ‘왕’이다. “엑스트라 양말까지 정해준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만큼 감독에게 전권이 부여돼 있고, 책임감도 막중하다. 그래서 감독 겸 배우를 맡는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연기력에 있어 타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는 배우 하정우의 경우라면 더욱 모험이다.
하정우가 영화 ‘허삼관’(제작 두타연, 배급 NEW)의 연출과 주연으로 돌아왔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영화 ‘암살’ 촬영과 ‘허삼관’의 개봉 시기가 겹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허삼관’ 촬영이 끝나고 하루 쉬고 상하이로 날아가 ‘암살’ 촬영을 했어요. ‘허삼관’ 편집과 후반 작업이 끝나니 홍보 활동이 시작됐네요. 어제는 VIP 시사회가 있어서 새벽 4시까지 일정을 마치고 왔습니다.”
하정우는 ‘롤러코스터’를 통해 감독 데뷔를 했지만 ‘허삼관’은 영화 제작 규모와 투자 상황이 전작과는 다르다. 상업영화의 틀을 갖춘 ‘허삼관’은 하정우가 배우를 넘어 감독으로도 성공할 수 있을지 가능성을 보는 척도가 될 전망이다.
“처음에는 감독이 아닌 주연으로 제의를 받았어요. 소설책만 읽고 출연을 결정했습니다. 허삼관이란 인물에게 매력을 느꼈어요. 이런 사람이 주인공이라면 상업적으로 관객과 소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감독직이 공석이었고, 제가 감독 제의를 받았어요. 고민을 해보겠다고 했는데 심장이 뛰더라고요. 그날 저녁 해보겠다고 말했어요. 결정할 수 있었던 힘은 ‘허삼관’이 가진 매력이었어요.”
지난 14일 개봉한 ‘허삼관’은 현재까지 63만 명이 넘는 누적 관객 수를 기록하며 ‘국제시장’ ‘오늘의 연애’와 박스오피스를 주도하고 있다. 세계적 소설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원작으로 한 탄탄한 스토리와 코믹ㆍ감동 코드의 조화, 하정우ㆍ하지원의 연기 앙상블 등 흥행 요소는 이미 다분하다. 모든 것은 하정우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가장 드라마적이면서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구조를 선택했어요. 시나리오 뼈대 위에 각 캐릭터와 가족이 겪는 갈등을 만들려 했어요. 자칫 밋밋할 수 있는 스토리에 많은 등장인물을 각 요소에 배치해 재미를 추구했죠. 시대는 50~60년대 사회가 아직 한국 영화에 소개되지 않았다는 점에 착안해 결정했어요. 여기에 판타지를 가미해 동화적 설정을 더했어요. 위화의 문어체가 흥미로워 최대한 손상하려 하지 않았어요.”
배우 하정우의 ‘감독 도전기’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보통 마음을 다잡지 않고서는 못할 일이에요. 모든 것을 차단하고, 사생활도 포기하고 해야만 되는 거라 생각해요. 그렇게 1년을 보냈어요. 영화는 가장 바쁠 때가 프리프로덕션 기간이에요. 오히려 촬영할 때는 여유를 찾을 수 있어요. 프리 기간에 영화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마치고, 촬영이 시작되면 배우 하정우가 늘 해왔던 것처럼 임했어요. 좀 더 부지런하고 많이 움직이려 했어요.”
하정우는 “신인감독 하정우는 증명한 것이 없다”며 “빚을 졌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배우 하정우에 대한 믿음이 신인감독 하정우에게 기회로 다가갔다. 그렇기 때문에 쉬는 날도 없이 일에 몰두했다. 사생활도 없었다. 배우 출신 감독이기 때문에 극한 감정노동을 요구하는 신에서는 그들의 고통을 알기에 테이크도 길게 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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