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이야기인데 그렇게 어렵나? 고 성완종 전 경남그룹 회장의 특별사면 건이다. 며칠씩 계속되는 공격과 반박을 그냥 보고 있기가 힘이 들었다. 참여정부의 기본정신이 훼손되고 있는 것 같아 더욱 그랬다. 그래서 결국은 이렇게 입을 열게 되었다.
다소 전문적인 이야기부터 하자. 대통령과 정부가 하는 일 중에는 배분적인 것이 많다. 특정인이나 특정 조직, 또는 특정 지역 등에 뭘 나누어 주는 일이다. 인허가를 해 주면서 누군가에게 권리나 권한을 부여하는 일이 그렇고, 여기저기 보조금이나 교부금 등 돈을 나누어 주는 일이 그렇다.
이 배분적인 일에는 몇 가지 특성이 있다. 첫째, 일반 국민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대충 알고 넘어가기도 하고 모르고 넘어가기도 한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은 뜨겁다. 이해당사자들이 열심히, 때로는 목숨 걸 듯 뛰기 때문이다. 그리고 셋째, 그러다 보니 수시로 의심을 받거나 특혜 시비가 일어난다.
그래서 이런 일을 할 때면 정부는 원칙과 기준을 세운다. 상시로 이루어지는 일이면 규칙과 규정으로 만들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그때마다 합당한 원칙과 기준을 세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해당사자들의 로비, 즉 회유나 협박에 나가떨어지기 쉽고, 그 결과 국정은 특혜 시비 등으로 몸살을 앓게 된다.
특별사면은 이러한 배분적 행위의 대표적인 예다. 따라서 이 또한 원칙과 기준을 세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통령과 정부는 이 원칙과 기준을 통해 사면의 이유와 범위를 구체화한다.
따라서 사면이 제대로 이루어졌느냐를 보려면 그때 적용된 원칙과 기준이 무엇이었느냐를 먼저 물어야 한다. 즉 원칙과 기준은 합당한 것이었는지, 또 제대로 잘 적용되었는지 등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 문제가 어디서부터, 왜 잘못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번의 경우 영 그렇지가 않다. 먼저, 문제를 제기하는 쪽부터 보자. 원칙과 기준이 무엇이냐를 묻기 전에 돈이 오갔을 것이라는 상상부터 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사면한 것이 수상하다는 둥, 또 누가 누구를 통해 부탁했을 것이라는 둥 국민을 자극하고 있다.
한심하다. 정부의 배분적 행위치고 그런 상상을 할 수 없는 부분이 얼마나 되겠나? 특정 기업에 연구개발보조금을 주는 행위, 특정인에게 특정한 권리를 부여하는 행위 등, 의심하기 시작하면 온전한 게 하나도 없다. 그렇게 무작정 의심을 할 바에는 차라리 정부더러 배분적 행위를 모두 그만두라 해라.
왜 이러는지 알 만하다. 일을 일로써 따지겠다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이미지를 훼손시키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한마디로 한심하고도 못된 짓이다.
반박하는 쪽은 더 문제다. 반박이라고 내놓은 것이 새로 들어설 이명박 정부 쪽 인사가 강하게 요청해서 사면해 주었단다. 물어보자. 새로 들어설 정부 쪽 사람이 부탁하면 다 사면시켜 주나?
‘원칙과 신뢰’를 앞세웠던 참여정부였다. 새 정부 쪽 인사의 요청으로 사면시켜 주었다는 말에 자존심이 상하고 자긍심이 무너져 내린다. 참여정부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말이다.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참여정부와 그 대통령을 그 나름의 원칙과 기준도 없이 누구 한 마디에 사면까지 시켜주는 한심한 정부로 만드나? 어이가 없다.
차라리 새로 들어설 정부 쪽 인사들의 요청은 모두 수용한다는 원칙이 있었다고 해라. 아니면 원칙을 포기하자는 원칙이 있었다고 해라. 차라리 그게 마음 편하겠다. 누가 요청하니 어쩔 수 없이,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풀어주었다는 말보다는 말이다.
결정의 책임은 그 결정을 내린 사람에게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 정신에 충실했다. ‘네가 요청했으니 네 책임’이라는 말은 노무현 대통령의 사전에 없다. 사면했으면 나름 설득할 수 있는 원칙이 있었을 것이다. 당시의 실무라인은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때 제대로 물어보지 못했으면 지금 추측이라도 해서 제대로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국민의 판단을 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