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메르스’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자 증권가에서는 당연히 ‘메르스 관련주’가 부각이 되고 투기적인 거래가 일어난다.
고통 받는 이들과 생명을 생각해 볼 시간을 갖는 것보다 그로 인한 당장 눈앞의 수익을 챙겨야 하는 사람들을 볼 때 씁쓸한 감정이 든다.
물론 투기적인 거래는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 준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고 시장이란 그렇게 유지되어 왔다. 단순히 흑백논리로 나쁘다고 할 수 없다. 다만 지금 우리가 잊고 살며 무뎌져 가는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시장논리에 면역이 되는 순간 사람과 생명에 대한 소중함과 인식은 멀어지게 된다.
혼란을 틈타 대공황 때 큰 돈을 벌었던, 투기 거래의 대명사였던 제시 리버모어는 투기 거래의 전설로 남았지만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어떻게 보면 미련해 보일 수 있지만 기업의 본질 가치와 ‘주주’로서 사회적 책임까지 생각해가며 정석적인 투자를 고집한 워런 버핏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지금까지 존경을 받고 있다. 이 둘의 차이는 어쩌면 ‘타인과 사회에 대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지금 사회 곳곳에서 인문학의 위기를 말한다. 우리가 얼마나 인문학의 기본인 ‘사람’과 ‘생명’, ‘이웃’과 ‘배려’의 소중함을 잊고 있지 않았는지 반문해 본다. 그리고 사람과 삶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정현종 시인의 시를 생각해 본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방문객, 정현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