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몇 번씩 울컥울컥 하게 만드는 글로벌 이슈를 따라잡기에도 지친다.
주말이면 TV 리모컨을 부여잡고 ‘카우치 포테이토’가 되어 무상무념의 세계로 빠져든다. 100개가 넘는 채널 중 ‘틀기만 하면’ 나오는 게 먹는 방송, 요리하는 방송, 이른바 ‘먹방’, ‘쿡방’이다.
이들 방송은 그야말로 난장이다. 그런데 정형화되지 않은 재미가 있다. 인기 배우들이 나와 어설프게 세 끼니를 해결하려 고군분투하는 모습에서부터 맛깔난 평가와 함께 엄청난 식욕을 자랑하는 개그맨들의 시식 장면, 유명인의 집 냉장고를 통째로 들고 나와 그 안에 있는 재료만 갖고 긴장감 있게 요리 대결을 펼치는 전문 셰프들의 모습, 외식업계의 대가가 나와 구수한 사투리를 섞어가며 요리 비법을 전수해주는 모습, 사회적으로 체면 좀 세운다는 점잖은 양반들이 데스크에 둘러앉아 전국의 이름난 맛집을 놓고 진지하게 토론하는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깨알 같은 재미를 느끼게 한다. 출연자들의 재치 있는 입담과 요리 비법, 맛집 정보, 유명인의 사생활 등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어딘가 낯익지 않은가.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의 일본이 그랬다. 필자가 잠시 일본에서 지낼 당시 현지에선 만화 덕분에 식도락 열풍이 일었고 TV를 틀기만 하면 맛집 탐방, 먹기 대결, 요리 대결 프로그램이 쏟아졌다. 심지어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문조사에서는 장래 희망이 요리사라는 응답이 적지 않았다.
당시 일본은 우울했다. 1985년 프라자 합의를 기점으로 잘 나가던 일본 경제엔 암운이 드리웠다. 버블 팽창과 붕괴를 거쳐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긴 침체의 터널을 지나던 시기였다.
뉴스에선 인파가 붐비는 공공장소에서 이유 없이 흉기를 휘둘러 귀중한 목숨을 빼앗는 등 묻지마 폭행 및 살인 사건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전해졌다.
패전의 폐허에서 뼈를 깎는 고통을 극복하고 얻어낸 고도 경제 성장기의 윤택함도 잠시, 다시 찾아온 불황에 호주머니가 얇아진 서민들은 늘 분노가 차오르고 배가 고팠을 터. 먹방이나 쿡방을 보고 대리 만족을 하며 우울하고 허기진 속을 달랬던 것은 아닐까.
그때 번화가에는 ‘다베 호다이(食べ放題)’, ‘바이킹’이라는 이름으로 스시(초밥)에서부터 고기, 피자, 파스타, 케이크 등 온갖 종류의 뷔페 음식점도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일정 정도의 돈만 내면 원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 보니 주머니가 얄팍한 학생이나 유학생, 서민들이 주로 애용했다.
물론 그때도 부유층은 별개의 세상에 살았다. 도쿄 쇼핑가나 대형 백화점에 가면 화려하게 차려입은 부인들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치장을 하고 유유자적했다. 당시 필자의 학교 선생님은 절대 다베 호다이나 100엔 스시 집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심지어 세븐일레븐(24시간 편의점)이 뭐 하는 곳이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만 영업을 해서 붙은 이름이냐는 질문에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혼네’와 ‘다테마에’로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의 특성상, 이같이 말하는 그의 본심은 알지 못했지만 고도의 경제 성장기를 지나온 세대로서 허리띠를 다시 졸라매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마지막 자존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현재 경제 규모에서 세계 11위인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만8500달러다. 20년 전보다 2배 이상 늘었다고는 하나 당시 일본의 1인당 GDP(4만2076달러)에는 훨씬 못미친다. 서민들의 삶은 20년 전의 일본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다.
한 시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는 매일 안타까운 사연들이 흘러나온다. 생활고를 비관해 동반 자살한 가족, 건물주를 살해한 세입자 등. 하지만 이내 채널을 돌리면 화려한 요리의 향연이 펼쳐진다. 정작 주머니 사정은 이것들을 누릴 만큼 녹록지 않다. 그저 채널을 고정시킬 뿐이다. 먹방 전성시대, 우울한 작금의 자화상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