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증권사 연구원이 푸념을 섞어 대답합니다. 이제껏 증권사들은 투자의견 ‘매도’를 중립 또는 이와 비슷한 다른 표현으로 썼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매도 의견을 내 (해당기업 또는 주주에게) 시달리기보다 차라리 리포트를 내지 않겠다”는 불만을 더 얹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이 같은 분위기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올 들어 금융당국은 증권사에게 매도 리포트를 내라고 더욱 독려하고 있습니다. 꽤 구체적으로 “비율로 정해서 발표하라”는 지시까지 내렸습니다. 정책의 출발은 존중합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법론은 없는 상황입니다.
증권사의 보고서는 주식시장에서 적잖은 영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보고서 한방(?)이 주가를 폭락시킬 수 있습니다. 거꾸로 상한가까지 끌어올릴 수도 있습니다.
투자의견 ‘매도’가 서슬퍼런 칼날이나 다름없다는 의미입니다. 반면 이러한 칼날이 현실에서는 양날의 검이 됩니다. 해당 기업이 특정 금융업무에서 이 증권사를 배제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인데요. 투자자를 위한 냉철한 보고서가 자칫 해당 증권사는 물론 관련 연구원에게도 불이익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게 현실입니다.
결국 매도 보고서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수많은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궁극점은 결국 ‘익명성 보장’에 모아집니다. 부정적 의견을 낸 연구원과 증권사가 노출되지 않는다면 보다 냉철하고 치밀한 분석을 담은 보고서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지요.
예컨대 ‘매도 의견’을 낸 증권사에 대해 해당 기업이 불이익을 줄 수 없도록 금융당국이 이를 대신하는 방식인데요. 증권사는 특정 기업에 대해 ‘매도’ 의견이 발생하면 이를 금감원에 제출합니다. 당국은 해당 기업에 대한 매도 의견이 ‘복수’로 발생할 경우 이를 종합해 발표하는 방식입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적은 이야기입니다. 금융당국 스스로 증권사에 책임을 떠넘긴 마당에 굳이 다시 나서야 할 이유가 없고, 당국이 증권사를 대신해 쓴소리를 들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지요.
증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알아주지도 않을 보고서를 위해 밤잠을 줄여가며 ‘리포트’를 작성해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시장의 상황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특정 기업에 대한 분석 보고서를 접할 때마다 어느 증권사인지 먼저 따져봅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매도 보고서가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권위를 지닐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그러나 “오죽하면 이런 의견까지 나오겠느냐”라는 생각에는 개인적으로 공감합니다.
우리 증권사들은 아직 상장기업의 보복(?)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매도 의견을 발표할 만큼 성숙되어 있지 않습니다. 시장의 상황도 증권사들의 의지보다 높은 장벽에 막혀 있습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증권사들이 냉철한 분석을 거침없이 내놓을 수 있도록 금융당국의 구체적인 혜안이 필요합니다. 내츄럴엔도텍 사태와 조선 빅3의 눈덩이 영업적자 사태는 냉철한 ‘매도 보고서’의 부재가 불러온 자본시장의 ‘오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