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는 전통적인 인공지능 개념은 흔히 약한 인공지능이라고 하는데, 독자적 판단까지 하는 강한 인공지능 개념이 언제쯤 실현될지 장삼이사도 논쟁 중이다. 하지만 현 단계에서의 인공지능 개념은 빅데이터와 가장 가깝다. 생체 데이터를 분석해서 병의 가능성을 예측하고, 기존 환자 데이터를 참고해서 자동으로 처방하는 수준의 인공지능이다. 구글이나 테슬라 같은 회사들이 실험하고 있는 무인자동차가 수년 내에 도로에 등장한다고 하는데, 각종 센서를 달아서 취합한 데이터로 주행 방식을 결정하는 것도 빅데이터에 기반한 인공지능으로 볼 수 있다.
‘10년 뒤 위기의 직업’이라는 주제로 학생들과 토론한 적이 있다. 논의가 간단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의사일 거라는 의견이 꽤 있었다. 이 의견의 주요 논거는, 로봇 수술이 간단한 수술을 대신하는 흐름이 확대될 것이고, 빅데이터 방식의 무인진단법도 더 정교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사람의 역할이 적어지고 수요가 줄 거라는 결론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각양각색의 직업은 시대에 따라 흥망성쇠의 과정을 밟는다. 20세기 이후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인간 삶의 방식에 큰 변화를 초래했고, 수많은 직업을 창출했다. 과학 기술의 혁신은 때로는 기존 직업의 성격이나 업무내용을 크게 바꾸기도 한다. 앞에서 예를 든 무인진단법은, 특정인의 생체 데이터를 애플 워치 같은 웨어러블 디바이스로 수집해서 이전 환자들에게서 수집한 생체 데이터와 비교하고 상호 유사성을 재는 것이다. 이 유사성을 재기 위해 빅데이터와 상당한 수준의 수학을 쓴다. 그 유사성이 아주 크면 병원을 방문해 정밀검사를 받도록 하는 것이니 불필요한 병원 방문이 크게 준다.
이런 흐름이 확대되면, 의사는 하루에 백 명의 환자를 검진하는 대신 열 명의 환자와 만나고 친밀한 관계를 구축하며 정밀한 검사를 할 수 있게 돼 오진 가능성도 낮아진다. 로봇이나 진단 소프트웨어에 업무의 일정 부분을 맡기고 의사는 난치병 치료법 개발 등 고차원의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니,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인 의사라는 직업의 업무 내용이 바뀌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기존 질서를 파괴하기도 한다. 무인자동차가 실현되면 택시의 운용 방식에 일대 변화가 불가피할 것인데, 실제로 미국의 운송네트워크 회사 우버는 이미 이런 실험을 시작했다.
직업의 변화를 체계적으로 추적하는 조사도 있다. 미국의 직업검색 전문업체인 커리어캐스트는 매년 미국 노동부 통계와 인구 센서스 자료 등을 토대로 미국 내 200개 직업을 작업 환경, 수입, 고용전망, 신체조건, 스트레스 등 5개 기준에 따라 순위를 매기고 있다.
2014년에 선정한 상위 열 개 중 다섯 개는 수학과 데이터를 다루는 직업이었다. 수학자(1위), 통계학자(3위), 보험계리사(4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7위), 컴퓨터시스템 분석가(8위)가 이 범주에 든다. 게다가 수학 분야의 일자리는 향후 8년 내 23%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인기 순위에서 수학자가 1위를 한 것은 사실 의외인데, 물론 연봉 때문은 아니었다. 매연, 소음 없는 좋은 환경에서 무거운 것을 들기 위해 몸 한 번 굽히는 일 없이 평균 연봉 10만1360달러를 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래에는 수학에 대한 친밀도가 좋은 직업을 구할 가능성을 높일 거라는 예측은 분명해 보인다. 전통적으로 문과 출신의 사람들이 일하는 광고나 홍보, 경영과 선거 전략 등의 영역에서도 숫자와 데이터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주요 자질로 부상하고 있다. 직업순위 조사를 다룬 월스트리트저널 기사에 따르면 수학 능력이 취업의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