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을 만들어 끊임없이 도전한다. 내가 독립한 이유는 아버지라는 거대한 라이벌을 뛰어넘기 위해서다.”
야나이 회장은 지난 1999년 아버지 추도사를 통해 도전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을 세상에 드러냈다. 야나이 회장의 아버지는 야나이 회장에게 옷가게를 물려주면서 “1등이 돼라”는 한 마디를 남겼다고 한다. 야나이 회장은 그때부터 가슴속에 ‘1등’이란 단어를 새겼고, 아버지란 커다란 산을 넘으려고, 전 세계 의류시장을 제패하기 위해 도전해왔다.
야나이 회장의 첫 번째 도전은 아버지가 운영했던 신사복 옷가게를 원자재 수입-제작 시스템으로 바꿨을 때로 꼽을 수 있다.
야나이 회장은 아버지를 따라 갑작스럽게 대(代)를 이어 옷가게를 운영하게 된 후 우연하게 태국을 방문하게 됐다. 태국 의류시장을 조사하고자 직접 발품을 판 것이다. 당시 야나이 회장은 태국 현지 시장에서 중국산 옷이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 유통환경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일본으로 돌아온 후 중국에서 저렴한 원자재를 직수입해 옷을 제작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수십 년간 아버지가 이끌어온 경영 방식을 하루아침에 뒤집어 놓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무모할 수 있었던 시도가 결국 지금의 유니클로를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
뿐만 아니라 매장 운영 방식도 파격적으로 바꿨다. 지금의 유니클로 전신인 ‘유니크클로딩웨어하우스(Unique Clothing Warehouse)’를 운영했을 당시 일본 옷 매장들은 보편적으로 오전 10시에 개점했다. 그러나 야나이 회장은 오전 6시에 가게 문을 열었다. 주고객층인 젊은 학생들이 학교에 가는 시간인 오전 10시 이전에 문을 열어야 한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그렇다고 야나이 회장이 모든 사업에서 성과를 올린 것은 아니다. 지난 2001년 처음으로 해외 매장을 개설하며 호기롭게 글로벌 시장에 진출했으나 쓴맛을 맛봐야 했다. 야나니 회장은 당시를 “화려하게 실패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당시 유니클로는 영국에 21개의 매장을 오픈했으나 불과 2년 만에 16개 매장을 폐쇄했다.
야나이 회장의 실패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2002년 의류업과 전혀 다른 야채사업에 관심을 돌렸다. 사업의 다각화 차원에서 시도한 사업으로, 당시 식품기업 료쿠켄그룹과 손을 맞잡았다. 야나이 회장의 계획은 식품을 공동 구매하고 공동배급하는 유통 역할을 할 계획이었다. 20년 가까이 성공가도를 달렸던 야나이 회장이 새로운 사업 활로를 뚫기 위해 또다시 모험심을 발휘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야나이 회장은 훗날 “식품업에 뛰어든 이후 우리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토지가 없으면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면서 사업의 부족함을 인정했고, 결국 야채사업은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놀랄 만한 성과와 예상치 못한 사업 실패 등 희로애락을 모두 겪은 야나이 회장은 지금 명실공히 일본을 대표하는 경영인으로 자리 잡았다.
야나이 회장은 포브스가 발표한 ‘2015 억만장자’ 중 일본인 가운데 1위(202억 달러)를 차지해 손 마사요시(손정의) 소프트뱅크 CEO(141억 달러)를 제치며 다시 한번 영향력을 과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