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굳건했던 카르텔에도 균열이 일 조짐이다. 시장 점유율 유지에 급급해 저유가 대책을 등한시하는 맹주 사우디아라비아에 일부 재정위기국이 반발하면서 불협화음이 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24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국제유가(WTI 기준)는 전일 대비 5.5% 폭락해 배럴당 38.24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이는 지난 2009년 2월 이후 6년6개월 만에 최저치다.
현재 국제유가는 공급 과잉과 최대 소비국인 중국의 경기 둔화 탓에 하락세에 제동이 걸리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사우디, 이란, 미국 등 주요 산유국은 원유 생산량을 계속 늘리며 시장 점유율 경쟁에 급급하다. 이로 인해 시장 내 수급 불균형 현상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문제는 저유가 기조가 지속되면서 OPEC 회원국들의 재정도 타격을 입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는 저유가, 예멘 공습 등으로 외환보유액이 6월 기준 6720억 달러(약 795조원)이 날아가자 이달 초 8년 만에 50억 달러 규모의 국채를 발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사우디는 저유가의 근본적인 원인인 감산은 거부하고 있다. 오히려 비(非)OPEC 회원국에 감산을 요구하고 있는 형국이다.
OPEC의 월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월 이후 OPEC 12개 회원국의 하루 평균 산유량은 목표치보다 많은 3000만 배럴에 달했다. 특히 지난 7월의 OPEC 회원국 산유량은 하루 평균 3150만 배럴로 3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16년 OPEC산 원유 수요는 3080만 배럴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수요 증가에도 200만 배럴 공급 과잉은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사우디보다 재정난이 심각한 OPEC 회원국들은 저유가 대책 마련을 강력히 요청하고 나섰다. 최근 샬라 헤브리 알제리 석유장관은 OPEC 사무국에 서한을 보내 “지난 6월 OPEC 회의에서 산유량을 동결(감산 거부)한 이후 유가가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시하고 “OPEC이 이를 위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오는 12월3일 개최될 예정인 정례회의 전 긴급회의를 열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OPEC은 알제리의 이런 요청에 대해 어떠한 답변도 내놓지 않고 있다.
RBC 캐피탈마켓의 상품전략책임자인 헤리마 크로프트는 “재정위기를 맞은 리비아, 알제리, 베네수엘라, 나이지리아, 이라크 등 5개 회원국이 OPEC에 반발함에 따라 지정학적 불안함이 커질 위험도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유가는 배럴당 30달러선에 바짝 다가선 상황. 씨티글로벌의 상품리서치 부문 책임자인 에드 무어스는 “유가가 배럴당 20달러선으로 떨어진다고 해도 전혀 놀랍지가 않다”며 “유가가 언젠가는 회복세를 보이겠지만 현재로선 상승시킬 요인이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