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회생절차를 밟는 기업의 신규자금 조달을 위해 채권자들의 참여가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법원과 신규자금을 지원하는 금융기관이 만나 회생절차 계획 수립 단계에서 채권단의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의견을 모았다.
서울중앙지법(원장 강형주)은 7일 오후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중회의실에서 파산부 법관과 금융기관 관계자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효율적인 기업회생을 위한 회생절차 개선 방안' 간담회를 열었다.
◇채권자 참여 폭 확대 필요성에는 법원-금융계 공감
이날 간담회에서는 회생절차에 채권단의 참여폭을 넓혀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한국산업은행 구조조정본부 이종철 실장은 "기존 회생절차에서는 법원이 채권금융기관에게 의견을 제시해달라고 요청하더라도 충분한 자료와 시간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며 "의견제시 여부와 무관하게 법원이 직권으로 결정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주제발표를 맡은 이재희 부장판사는 "기업 회생절차를 수술에 빗대자면 신규자금 조달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수혈이 잘 안 되는 것과 같다"며 "결국 채권자 신뢰를 얻는게 먼저고, 채권자의 절차 참여 확대가 관건일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금융계, '워크아웃+회생절차' 새 트랙 필요성 주장
주로 채권단 입장에서 서게 될 금융기관은 원활한 신규자금 조달을 위해 워크아웃과 회생절차를 결합한 '크레디터스 트랙(Creditor's track, 이하 C트랙)을 도입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금융기관들은 채권단 개입여지가 넓은 워크아웃에서는 신규자금을 활발하게 지원하지만, 법원 주도로 진행되는 회생절차에서는 신규자금을 거의 지원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 실장은 우선 채권금융기관 협의회 주도로 워크아웃을 통한 경영정상화 계획을 수립하는 안을 제시했다. 이후 법원 회생절차가 종결되면 다시 채권금융기관이 개입해 경영을 관리하고 기업을 정상화하자는 방안이다. 관리인이 회생계획안을 작성하고 제출하는 기존 회생절차와는 차이가 있다.
이렇게 절차를 진행하면 협약 대상 채권자에게만 유효했던 워크아웃 단계에서의 계획이 법원 회생인가를 통해 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발생한다는 장점이 있다. 금융, 상거래 채권 뿐만 아니라 우발적인 채무나 손해배상 채권이 발생해도 대응이 수월해진다.
이를 위해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 등 관련 법 규정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금융위원회 유재훈 구조조정지원팀장은 "통합도산법에 기촉법 요소를 반영하는 개정작업을 진행해서 오늘 논의된 4가지 트랙(워크아웃, 회생절차, C트랙, 청산·파산)이 반영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법원, '사전계획안' 등 현재 운영방안 활성화 강조
법원도 채권자 참여를 통한 신규자금 유입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다. 이재희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대한조선이 회생에 성공한 예를 들었다. 그는 "은행이 제공한 신규자금으로 상거래채무를 갚고, 운영자금을 확보해 영업망을 유지한 채 신속하게 회생에 성공했다"며 "소수의 사례를 제외하고는 회생기업에 대한 신규자금 지원이 원활하지 못해 개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원의 해법은 금융계와는 차이가 있다. 금융계가 새로운 절차를 도입하자는 입장이라면, 법원은 현재 운영되는 절차를 유지하는 선에서 채권자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부장판사는 사전계획안 제출 제도를 꼽으며 "인식과 경험 부족으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일 뿐"이라고 진단했다. 현행 채무자회생법에 따라 운영되고 있는 사전계획안은 채권금융기관들이 워크아웃 절차에서 마련한 경영정상화계획을 회생계획안으로 제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굳이 'C트랙'을 도입하지 않더라도 워크아웃 단계에서의 장점을 회생절차에 반영할 수 있다는 게 이 부장판사의 생각이다.
법원이 지난 7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시행하고 있는 '자산 매각 후 재임대 방식'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회생절차 기업이 부동산을 매각하더라도 그 부동산을 다시 임차해 영업기반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이 부장판사는 금융기관들이 회생절차에서의 조사위원 조사결과를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보고 △회생기업의 재무상황 △회생가능성 △계속기업가치 등에 관해 정보제공을 활발히 함으로써 신규자금지원을 유도할 수 있다고 봤다. 또 채권자협의회를 통해 신규자금을 지급한 주체의 발언권을 확보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게 이 부장판사의 설명이다. 그는 "신규자금 제공자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신호를 줄 필요가 있다"며 "경우에 따라서는 신규자금 사용 목적을 특정하는 방안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