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주변을 둘러보면 담이 조금 높긴 하지만 특별히 이상한 느낌은 없다. 정문을 거쳐 건물 뒷마당으로 들어가 본다. 둥글게 말린 건물 후면 벽체 사이로 작은 출입문이 있다. 철문을 열고 들어서면 좁은 전실과 복도가 나오는데 그 끝에 작은 엘리베이터와 철제 나선계단이 있다. 텅. 텅. 수직으로 뻗어 있는 나선계단은 발자국을 뗄 때마다 소리가 크게 울렸다. 계단이 끝나는 층은 5층. 한발 한발 복도를 걷는다. 마침내 ‘509’라고 쓰인 방문 앞에 선다. 문을 열어 보니 익숙한 누군가의 영정사진,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슬픈 기운들. 온기라고는 하나 없는 이 냉정한 공간 속에서 28년 전 박종철이란 한 인간이 외롭게 죽음을 맞이했다. 비좁은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니 바깥세상이 아득한 비현실 풍경처럼 느껴졌다.
용산구 갈월동 88번지에 가면 깔끔하게 잘 지어진 짙은 회색 벽돌 건물이 하나 있다. 70~80년대 인권 탄압의 대명사로 불렸던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현재는 경찰청 ‘인권보호센터’ 간판을 달고 있다. 1987년 1월 14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벌어진 이곳은 현재 서울 미래 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벽돌로 깔끔하게 마감된 외부 형태는 전체적 비례감과 창호 배열, 매스의 균형감 측면에서 건축을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꽤 실력 있는 건축가의 솜씨임을 짐작할 수 있다.
서울시는 근현대사의 문화유산 보전을 목적으로 현재 약 350건의 미래 유산을 선정해 운영하고 있다. 이발소, 다방, 여관, 해장국집, 오래된 책방과 골목, 심지어 대중가요까지 시민들의 집단기억 중 미래에 남겨야 할 의미와 가치가 있는 모든 유·무형의 자산을 포괄한다. 말하자면 미래 유산은 이 도시가 미래 세대에 넘겨주고 싶은 ‘이야기’인 셈이다.
도시를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건물이나 도로가 아니라 우리의 기억, 감정 같은 소소한 생활의 흔적들이다. 서울 미래 유산이 보이지 않는 소중한 자산들을 지키는 역할이 돼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