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계속 이렇게 말했다. “진(秦)나라가 몹시 빨리 망한 이유는 그 수레바퀴의 자국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바큇자국을 피하지 않는다면 뒤에서 오는 수레는 곧 엎어질 것입니다.”[秦世之所以函絶者 其轍跡可見也 然而不避是 後車又將覆也]
앞 수레가 엎어지며 남긴 바큇자국, 즉 전철은 밟지 말아야 한다. 이런 교훈을 전복후계(前覆後戒) 복거지계(覆車之戒) 전거복철(前車覆轍) 전거지감(前車之鑑) 전거가감(前車可鑑)이라고 한다. 전철을 다시 밟는 것은 중도복철(重蹈覆轍)이다.
가의보다 후대인 한(漢)의 유향(劉向·BC 77~BC 6)이 지은 설원(說苑) 선설(善說)편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위(魏) 문후(文侯)가 대부들과 술을 마실 때 공승불인(公乘不仁)에게 상정(觴政, 벌주를 집행하는 심판)을 맡겼다. “잔을 다 비우지 않는 사람은 큰 술잔으로 벌주를 마시게 하라.” 그런데 정작 문후 자신이 잔을 비우지 않아 공승불인이 벌주를 주려 하자 문후는 쳐다보기만 했다.
옆에 있던 시종이 “임금께서는 이미 취하셨소”라고 하자 공승불인이 말했다. “주서(周書)에 ‘앞의 수레가 엎어지면 뒤의 수레에 경계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앞사람이 행동을 단정히 해야 함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중략) 임금께서 규칙을 정해놓고 지키지 않으시면 되겠습니까?” 문후는 옳은 말이라며 벌주를 마신 뒤 그를 상객(上客)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