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분할을 청구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는 재판상 이혼이 아닌 협의 이혼에서도 무효라는 대법원 첫 결정이 나왔다.
그동안 대법원은 재판을 통해 강제 이혼하는 경우 재산 분할을 미리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일선 법원에서는 부부가 협의로 이혼하는 경우에 한해 재산 분할 포기 각서를 유효한 것으로 인정한 사례가 종종 있었다.
대법원 1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40대 여성 A씨가 남편 B씨를 상대로 낸 재산분할 심판 재항고심에서 A씨의 재산분할청구권을 인정하지 않은 원심 결정을 깨고 사건을 청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1일 밝혔다.
재판부는 "재산분할청구권은 이혼이 성립한 때에 비로소 발생한다"며 "협의 또는 심판에 의해 구체적 내용이 형성되기까지는 범위와 내용이 불명확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권리가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아직 이혼하지 않은 당사자가 협의이혼을 전제로 재산분할청구권을 포기하는 서면을 작성했더라도, 재산액 형성에 관한 기여도나 분할방법에 관해 진지한 논의가 없는 이상 재산분할에 관한 협의가 이뤄졌다고 봐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A씨는 2001년 6월 B씨와 결혼했다. 이 부부는 2013년 9월 이혼하기로 했는데, A씨는 B씨의 요구에 따라 '위자료를 포기하고, 재산분할을 청구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써줬다. 법원에 협의이혼 신청을 낸 A씨와 B씨는 같은해 10월 법적으로 이혼했다.
하지만 이혼 후 A씨가 변호사로부터 "수천만원 이상의 재산분할을 받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갈등이 생겼다. A씨는 B씨에게 재산을 나눌 것을 요구했고, B씨는 A씨가 각서를 써주고도 말을 바꾼다며 재산분할 협의에 응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B씨는 '독립할 자금이 필요하면 주겠다'는 문자메시지를 A씨에게 보내기도 했다.
억울한 생각이 든 A씨는 B씨를 상대로 "6억6800만원을 달라"며 법원에 재산분할 심판을 청구했다. 그러나 1심은 B씨가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없다고 봤다. 재산분할 청구권을 미리 포기하는 것은 재판상 이혼의 경우에는 무효지만, 협의 이혼의 경우에는 당사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2심 재판부도 같은 이유로 A씨의 청구를 각하했지만, 대법원은 이 결정을 뒤집었다.
가사 사건 전문인 새올법률사무소의 이현곤 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결정은 협의 이혼에서도 재산 분할에 관해 구체적인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부부가 서로 재산에 관해 구체적인 사정을 고려해 포기를 하는 것은 무방하지만, 그렇지 않고 아무 내용 없이 일방적으로 재산 분할 청구권을 포기하게 하는 것은 무효가 될 소지가 높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