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역지사지

입력 2016-06-02 10:31 수정 2016-06-0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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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영길 사회경제부 기자

법원에서 재판장으로 일하시는 분들을 만나면 대형 로펌이 제출하는 서면의 질에 관해 묻곤 한다. 체감할 정도로 우수하다는 답도 있지만, 주장하는 내용에 비해 불필요하게 장황하고 양이 너무 많다는 의견도 적지 않게 듣는다.

대법원이 최근 당사자가 제출하는 일부 서면 분량을 A4용지 30쪽으로 제한하는 입법안을 내놓았다. 일부 변호사들은 재판부가 아닌 의뢰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서면의 양을 늘리기도 한다. 보수를 지급하는 의뢰인에게 '열심히 일한다'는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제출된 서면의 양은 고스란히 재판부의 업무 부담으로 이어지고, 재판 지연이나 불충분한 심리는 결국 당사자들에게도 손해로 돌아온다. '변론권 제한'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도입할 만한 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한 번 짚어볼 문제다. 법원이 작성하는 '장황한 서면'으로 인해 낭비되는 사회적 비용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여기서 지칭하는 서면은 판결문을 말한다. 몇 해 전 취재를 위해 로스쿨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판결문을 읽는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대부분의 응답자가 '자주 느낀다'고 답했다. 의외였던 점은 판결문을 읽기 어려운 이유가 어려운 전문 용어 때문이 아니라 문장이 복잡하고 너무 긴 분량 때문이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답변은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법조 기자로 7년째 일하고 있지만, 여전히 판결문을 읽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가끔 100페이지가 넘어가는 판결문을 받아들 때는 읽기도 전에 숨이 턱 막힐 때도 있다. 그래도 기자는 법원을 통해 설명이라도 들을 수 있어 좀 낫다.

변호사가 재판부에 제출하는 서면은 판사들만 읽는다. 하지만 법원이 작성한 판결문은 그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읽고, 때에 따라서는 행동 규범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재판을 받는 당사자가 간결한 서면을 제출한다면, 법원 역시 걸맞는 판결문으로 답해 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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