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영의 경제 바로보기] 화폐개혁(Redenomination) 바로알기

입력 2016-07-04 10:39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화폐의 액면 단위를 바꾸는 화폐개혁 즉,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이 지하자금을 양성화하는 수단으로 자주 거론된다. 얼마 전 ‘더민주당’의 경제통이라는 국회의원도 “한국의 과도한 지하경제를 줄이고, 계산 편의 등을 위해 리디노미네이션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이들의 생각처럼 리디노미네이션을 통해 지하자금의 양성화가 가능한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는 화폐개혁이 세 번 있었다. 첫 번째는 1950년 8월 28일로 신·구 화폐의 교환 비율이 1 : 1이었다. 6·25 때 한국은행 금고에 있던 현찰이 북한군의 수중에 넘어가 어쩔 수 없이 새로운 돈을 만들어 단계적으로 구화폐의 유통을 정지했다. 둘째는 1953년 2월 17일로 군비 지출로 늘어난 유동성 흡수, 체납세금 회수 등이 목적이었다. 화폐 단위를 원에서 환으로 변경하고 교환 비율을 100 : 1로 하였다. 세 번째는 1962년 6월 9일로 지하자금을 끌어내 산업 자금화하고 물가 오름세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화폐 단위를 다시 환에서 원으로 바꾸고 교환 비율을 10 : 1로 하였다.

세 번의 화폐개혁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는 화폐의 액면 단위를 바꾸는 리디노미네이션이었다. 여기에서 세 번째 화폐개혁은 비밀리에 추진했고 신·구 화폐의 교환기간을 일차적으로 7일만 허용하여 지하자금을 끌어내려 하였다. 그러나 최종적인 입금 결과는 100만 환(10만 원) 이하가 90.5%를 차지해 거액 지하자금을 산업 자금화하려는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리디노미네이션을 통해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려면 1962년과 같이 비밀리 준비하여 갑자기 시행하고, 교환기간을 아주 짧게 하여야 한다. 리디노미네이션 계획이 미리 알려지면 지하자금 등 시중의 현금이 급격히 금이나 외화매입, 부동산 등 실물투자로 이동하면서 경제가 대혼란에 빠지고 지하경제의 양성화도 기대할 수 없다. 교환기간이 길어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

현재 한국에서 화폐개혁, 즉 리디노미네이션을 비밀리에 아주 짧은 교환기간 안에 할 수 있을까? 화폐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화폐를 시행 날짜에 맞추어 미리 충분히 인쇄해 놓아야 한다. 새 화폐 제조에는 많은 사람이 관여하고 시간도 많이 걸려 비밀을 지키기 쉽지 않다. 과거와 같이 외국에 발주해 비밀리에 인쇄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정해진 날에 유통시키고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선 CD기나 ATM 등이 새 화폐를 인식하지 못해 사용할 수 없다. 바뀐 단위 때문에 인터넷뱅킹이나 모바일금융, 은행 간 자금이체, 수표 사용, 증권거래 등이 불가능해진다. 은행 전산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아 통장을 수기로 발행해야 하고, 금융기관 마감이나 결산도 수작업으로 해야 한다. 아마 한국경제가 마비될 것이다. 결국, 리디노미네이션은 새로운 화폐의 제작뿐 아니라 금융기관 전산 및 결제시스템의 수정, ATM기의 교체 등을 위해 공개적인 사전 준비기간을 충분히 갖지 않으면 시행할 수 없다.

화폐개혁이 미리 예고된 상태에서, 교환기간을 짧게 하고 일정액 이상의 현금은 강제 예치 등의 제한을 둔다면 어떻게 될까. 거액의 현금과 지하자금 등은 준비기간 중에 해외도피, 금이나 달러, 부동산 등으로 다 숨어 버릴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화폐개혁 이후에는 언제든 예전 화폐를 가져오면 새로운 화폐로 바꿔준다고 하여야 한다. 즉 교환기간의 제한을 둘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교환금액의 상한도 없어야 국민들이 동요하지 않는다. 1999년 유럽에서 단일통화인 유로화 도입이나, 2005년 터키의 100만 대 1의 리디노미네이션도 교환기간, 교환금액의 제한이 없었다.

이렇게 볼 때 지금 한국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은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기 위한 정책으로서는 의미가 없다. 단지, 돈이나 계산 단위의 동그라미 개수가 줄어 편해지고, 달러당 환율이 1200 대 1이 아니고, 1.2 대 1이 되어 국격(?)이 조금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화폐제조, ATM기 교체 등에 비용이 많이 든다. 어찌 보면 거리를 멋있게 보이려고 전국의 보도 블록을 일시에 새것으로 교체하는 것과 비슷하다. 리디노미네이션은 정부의 신뢰성과 투명성이 높아지고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고 경제 상황이 좀 더 여유가 생겼을 때 해볼 수 있는 정책이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비트코인, 10만 달러 못 넘어선 채 급락…투심 위축 [Bit코인]
  • 삼성 사장단 인사… 전영현 부회장 메모리사업부장 겸임ㆍ파운드리사업부장에 한진만
  • 서울 폭설로 도로 통제…북악산로ㆍ감청동길ㆍ인왕산길ㆍ감사원길
  • 단독 삼성화재, 반려동물 서비스 재시동 건다
  • 美ㆍ中 빅테크 거센 자본공세…설 자리 잃어가는 韓기업[韓 ICT, 진짜 위기다上]
  • 재산 갈등이 소송전으로 비화…남보다 못한 가족들 [서초동 MSG]
  • 트럼프 관세 위협에… 멕시코 간 우리 기업들, 대응책 고심
  • 韓 시장 노리는 BYD 씰·아토3·돌핀 만나보니…국내 모델 대항마 가능할까 [모빌리티]
  • 오늘의 상승종목

  • 11.27 12:41 실시간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29,415,000
    • -1.7%
    • 이더리움
    • 4,684,000
    • -2.21%
    • 비트코인 캐시
    • 690,000
    • -1.08%
    • 리플
    • 1,907
    • -5.12%
    • 솔라나
    • 324,000
    • -2.11%
    • 에이다
    • 1,316
    • -3.09%
    • 이오스
    • 1,090
    • -4.89%
    • 트론
    • 274
    • -0.72%
    • 스텔라루멘
    • 596
    • -15.1%
    • 비트코인에스브이
    • 92,200
    • -2.64%
    • 체인링크
    • 24,180
    • -1.19%
    • 샌드박스
    • 819
    • -11.27%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