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키워드] 젠가게임과 귓속말 잇기-책임 전가, 그리고 소통을 가장한 불통

입력 2016-09-0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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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코스카저널 주간

두 가지 게임에 깊이 꽂혔다. 하나는 ‘젠가(Jenga)’이고 다른 하나는 ‘귓속말 잇기’이다. 모든 게임이 삶을 베낀 것이라면, 오늘날 우리 현실을 가장 근접하게 담고 있는 게임이 이 두 가지가 아닐까 생각한 지 여러 날 됐다.

‘젠가’는 직육면체 나무 블록 54개를 한 층에 3개씩, 18층으로 쌓은 탑에서 게임 참가자가 돌아가면서 블록을 하나씩 빼서 맨 위에 다시 얹다가 탑이 무너지면 제일 마지막에 블록을 뺀 사람이 무너뜨린 책임을 지고 벌을 받는 게임이다. (‘Jenga’는 아프리카 남동부 지역 스와힐리어이며 뜻은 ‘쌓는다’이다.)

‘젠가’에 꽂히게 된 것은 7월 18일 서울남부지법 김춘호 판사가 ‘방화대교 상판 붕괴 사고’ 선고 공판 판결문에서 “이 사건은 젠가와 비슷한 것입니다”라고 말했음을 알고 나서부터다.

‘방화대교 상판 붕괴 사고’는 2013년 7월 30일 오전 올림픽대로와 방화대교 접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발생했다. 200톤이 넘는 상판이 내려앉아 인부 2명이 숨졌다. 조사 결과 2008년 완료된 1차 공사에서 콘크리트 슬래브가 설계도와 달리 시공됐고, 사고가 발생한 2차 공사 때는 1차 공사의 부실을 고려하지 않고 시공한 것이 드러났다.

김 판사의 판결문은 이렇다. “마지막으로 뺀 블록 하나 때문이 아니라 그 전에 다른 참가자들이 뺀 블록의 영향이 누적됐기 때문에 젠가의 탑이 무너지는 것처럼 이 사고 역시 어느 한 사람의 책임이 아니라 공사 관련자 모두의 과실이 누적된 것이다.”

기소된 7명 모두가 실형을 받았지만 형량은 다 다르다. 공사를 1차로 수주한 원청업체 관계자에게 가장 무거운 형량이, 붕괴된 상판 공사를 직접 시공한 말단 하도급 업체 직원에게 가장 가벼운 형이 선고됐고, 감리단 직원과 설계사들에게는 가운데 형량이 부과됐다.

젠가는 곧 전가인가. 나는 이 판결이 ‘책임의 전가(轉嫁)’가 우리 사회에서 크게 문제 삼아야 할 부도덕한 행위임을 일깨워줬다고 생각한다. 양형 이유가 설명해준다. 김 판사는 “공사 최고 책임자인 원청업체의 책임이 가장 크고 감리와 설계는 그 다음이며 젠가로 치면 마지막 행위자라 할 수 있는 하도급 업체는 원청업체의 지시를 받아 일했기 때문에 책임이 제일 작다”고 밝혔다.

마지막에 블록을 빼낸 사람에게만 책임을 묻는 젠가의 규칙은 이 판결로 달라져야 할지 모른다. 그가 마지막에 블록을 빼게 됨으로써 탑을 무너뜨린 것은 사실이나 앞에서 블록을 뺀 사람들의 책임이 전가된 데 따른 또 다른 피해자라고도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모든 분야에서 계속되는 갈등과 대립, 분열과 비방에 대해 정말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을 지기는커녕 뻔뻔스럽게도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넘기는, 책임의 전가를 일삼는 사회다. 정치인, 관료, 기업인, 교육자, 언론인 등등 모두가 책임을 떠넘기기만 할 뿐 자기에게 책임이 있음을 좀체 시인하지 않는 사회다.

그래서 나는 젠가의 새로운 규칙은 우리 사회의 모든 젠가게임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사회의 젠가에서는 언제나 약자들이, 어쩔 수 없이 마지막으로 블록을 빼게 된 사람들이 모든 책임을 지는 때가 많기 때문이다. 왜 그들만이 간당간당, 아슬아슬, 근래 들어 더 심하게 흔들리는 대한민국 젠가의 탑을 지켜보며 가슴을 졸여야 하는가? 왜 가장 먼저, 가장 크게 탑을 흔든 사람은 벌을 면하는가? 책임을 전가한 사람은 책임에서 면제되는 것인가? 젠가게임은 ‘전가게임’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귓속말 잇기’는 여러 사람이 죽 늘어서거나 앉아서 앞사람이 한 말을 뒷사람에게 귓속말로 전한 후 맨 마지막 사람이 자기가 들은 대로 크게 외치는 게임이다. 수년 전 폐지된 ‘가족오락관’이라는 모 방송사 TV프로그램에서는 ‘고요 속의 외침’이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모았다. 이 게임은 앞사람의 입모양만 보고 무슨 말인지를 짐작해 뒷사람에게 전하는 것이어서 마지막에 가서는 엉뚱한 말로 바뀔 확률이 아주 높았다. ‘작심삼일’이 ‘남북통일’을 거쳐 ‘단풍놀이’가 됐다가 ‘남포동길’이 되는 식이다. 짧은 단어가 이럴진대 문장을 귓속말로 이으면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왜곡된 문장이 만들어진다. 소통은 소통이되, 뜻이 바로 전달되지 않으니 사실은 ‘불통(不通)’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지금 젠가게임을 하면서 또 ‘귓속말 잇기’ 놀이도 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는 이렇게 말한 것이 저기에서는 원래와는 전혀 다른 엉뚱한 말로 왜곡, 변형되고 있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귓속말 잇기’ 게임 때문에 ‘힘들어 죽겠습니다’가 ‘살맛나는 세상입니다’로, ‘이대로는 안 됩니다’가 ‘잘 하고 계십니다’로, ‘생각을 바꾸십시오’가 ‘평가는 역사가 내립니다’로 바뀌고 있다고 생각한다.

게임으로서의 귓속말은 제3자가 듣지 못하도록 귓속에 속삭이거나, 소리는 내지 않고 입모양으로 전하지만 현실에서의 귓속말은 남이 다 들을 수 있도록 크게 말할 때가 많다. 그런데도 끝에 가서는 무지막지한 변형과 왜곡이 일어난다. 누군가가 일부러 말을 고쳐 전하고 있고, 누군가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불통과 고집들이 이처럼 오래 계속되고 있을까!

젠가와 귓속말 잇기, 이 두 게임은 지금 우리 사회를 가장 잘 담고 있는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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