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국남의 직격탄] ‘슈퍼스타K’와 ‘하버드대생’

입력 2016-10-06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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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평론가

TV 화면 상단의 ‘하버드대생’이라는 자막이 눈에 들어온다. “기본 소리 내는 것조차 안 된다”라는 한 심사위원의 말처럼 미국 하버드대 학생 출연자의 노래 실력은 형편없었다. 방송에서 소개할 만한 출연자였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다. 가수를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 엠넷 ‘2016 슈퍼스타K’다.

그가 방송에 소개된 것은 ‘하버드대생’이라는 학벌로 이슈를 만들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 수 있다는 제작진의 판단 때문이었으리라. ‘보스턴 미대생’ ‘서울대 출신 CEO’ ‘버클리 음대’…9월 29일부터 방송하고 있는 ‘슈퍼스타K 2016’ 출연자 소개 자막들이다.

가창력과 스타성을 평가해 스타 예비 자원을 선발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인데도 ‘슈퍼스타K’는 그동안 지속해서 출연자의 학벌로 시청자 눈길 끌기 앵벌이를 해왔다. 천박하고 자극적인 편집이다. ‘슈퍼스타K’뿐만 아니다. 노래 경연 프로그램인 SBS ‘판타스틱 듀오’를 비롯한 수많은 예능, 교양 프로그램 등에서 프로그램 성격과 무관한 출연자의 학벌을 전면에 내세우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슈퍼스타K’ 제작진의 출연자 관심도는 학벌 순인가?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와 미국 대학만 화면에 명기하고 지방대는 표시도 안 하네.” 한 시청자의 항변은 ‘슈퍼스타K’의 대학과 학벌에 대한 재현 방식이 얼마나 문제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한, 문화학자 엄기호 박사가 저서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를 통해 가했던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는 곧 그 사람 인생 전체의 운명이 된다. 한국 사회는 대학 서열이 인생에서 대부분의 차이와 차별을 결정하는 체제다”라는 비판을 절감하게 된다.

‘슈퍼스타K’를 비롯한 수많은 TV프로그램이 펼쳐내는 대학과 학벌에 대한 지배적 서사와 이미지, 재현 방식은 대학 서열에 따르는 위계주의로 물들어 있다. TV가 반복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대학과 학벌 재현 양태는 수많은 수용자에게 학벌과 대학에 대한 편견과 왜곡된 인식을 심어준다. 미디어가 무차별적으로 쏟아내고 있는 학벌과 대학에 대한 문제 많은 재현이 사람들의 인식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영향으로 수많은 사람들은 학벌 지상주의의 폐해에 대한 인식이 마비되고, 대학 서열화와 학벌에 따른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최근 대학 서열을 당연시하는 대학 서열 중독증에 빠진 대학생이 증가하고 있다. 상당수 젊은이가 대학 간판이 평생의 능력으로 평가되는 불합리한 학력 위계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없다. 오죽했으면 사회학자 오연호 박사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이라는 섬뜩한 책 제목까지 등장했을까.

‘슈퍼스타K’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눈길을 끌고 인기를 얻은 것은 학벌 등 스펙과 상관없이 오로지 노래 실력만으로 평가받아 우승할 수 있다는 성공신화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오디션 프로그램이 출연자의 학벌 등 스펙을 요란스럽게 현시하며 시청률 구걸에 나서고 있다. 정말 아이러니하다.

요즘 송강호가 단연 화제다.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송강호가 최근 상영 중인 ‘밀정’을 비롯한 주연 영화 22편으로 관객 1억 명을 동원했기 때문이다. “송강호에게 출신 대학을 묻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가 어느 대학을 졸업했는지도 모른다. 연기를 정말 잘하기 때문이다. 서울대 출신이라는 학력은 배우 생활과 전혀 상관없다. 대학을 졸업한 지 20년이 지났는데도 사람들이 아직도 나를 서울대 출신 배우로 생각하면 내가 연기를 못하고 있는 거다.” 배우 정진영의 말이다. 참가자의 학력을 전면에 내세우며 시청률 올리기에 급급한 ‘슈퍼스타K’ 제작진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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