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전경련] 전문가 4人 제언 “재계 대변할 조직은 필요… 해체보다 연구기관 변신을”

입력 2016-12-12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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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과거의 망령에 붙들려서는 안 된다. 정경유착의 산물로 태어나 재벌의 기득권을 옹호하며 공정한 시장경제 발전의 장애물이 돼왔던 전경련은 부패한 정권의 심부름꾼으로 전락했다. 변신이 아닌 해체가 필요하다.”

“공정하고 광범위하게 경제계의 의견들을 정부와 소통하고 내부적으로 조정하는 역할은 필요하다. 발전적으로 변신해야 한다.”

해체 위기에 몰린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가 회원사들의 의견을 수렴해 쇄신안 마련에 나설 것이라고 밝힌 가운데, 경제사회 전문가들은 정경유착의 고리이자 통로로 지적돼 온 전경련이 더 이상 현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데는 인식을 같이했다. 하지만 해체냐, 발전적 변신이냐는 데에서는 각기 다른 의견을 표명했다.

본지는 12일 전경련의 현 상황에 대해 진단하고 앞으로 나갈 방향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 이상민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등 전문가 4인의 의견을 들었다.

이들은 현 전경련 사태의 원인에 대해 전경련이 지닌 태생적 한계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박상인 교수는 “1970년대 전경련은 정부와 재벌 간 협조적인 관계를 위한 태어나 경제발전에 기여하며 성장했다”며 “그런 의미에서 전경련 자체가 처음부터 정경유착의 조직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상민 교수도 “전경련이 정경유착의 고리로 지목되고 있는 부분에서는 역사적 과오가 있었다”며 “전경련이 과거 산업 발전 일변도에서 생긴 경제단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시 시대적 분위기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전경련이 탄생한 시기는 정부 주도의 경제정책이 이뤄지던 산업화 시대로, 당시 기업이 정부의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웠던 것이 현실이었다. 조동근 교수는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 및 정치권과 논의할 창구가 필요할 수 밖에 없다”면서 “전경련은 다만 재계의 플랫폼 역할을 했을 뿐, 정경유착의 주체를 담당하기 위한 단체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금이 전경련의 역할과 기능을 새롭게 재정립할 때라고 주장했다. 다만 방법론에 있어서는 차이를 보였다. 과감한 해체 수순을 밟아야 한다는 강경론과 함께 발전적 해체를 통해 재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또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청문회에서 언급한 미국 ‘헤리티지재단’과 유사한 싱크탱크로의 변화를 개혁 모델로 제시하기도 했다.

김상조 소장은 “전경련이 변신한다고 하더라도 공정성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 최소한의 신뢰도 받을 수 없는 조직이 됐다”면서 “전경련은 변신이 아니라 해체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익단체 기능을 갖는 형태로 전경련이 변신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며, 순수한 연구기관으로 전환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의견을 밝혔다.

박상인 교수는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을 좀 더 키우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다”면서 “경제 발전의 그늘에 있었던 소외계층을 위한 정책 연구와 사회공헌을 할 수 있는 재단을 만드는 것이 그동안 재벌들이 저질렀던 과오를 용서받고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을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상민 교수 역시 “이제 경제단체는 공정하고 광범위하게 경제계의 의견들을 모아, 국회와 소통하고 내부적으로 조정하는 역할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경련의 해체 여부를 정치권 등 외부에서 거론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동근 교수는 “현재 사태를 만든 것도 결국 정치권력인데, 정경련과 같은 민간 조직에 대해 정치권력이 감 놔라 배 놔라 좌지우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활발한 투자와 고용 창출을 위해서는 재계와 정치권이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들 전문가들은 전경련이 해체될 경우 재계를 대변할 경제단체의 목소리가 줄어든다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서는, 이미 대한상의가 그 역할을 해내고 있다며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박상인 교수는 “해외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경제단체는 대한상의 같은 법정 조직 정도”라며 “정부 주도, 재벌 중심의 경제단체는 박정희 시대의 산물이기 때문에 결국은 없어져야할 단체”라고 의견을 밝혔다.

김상조 소장 또한 “재계가 기본적으로 자기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를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다만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재계 기본 이익단체는 상의이며 우리 역시 16만 기업을 회원사로 갖고 있는 대한상의가 충분히 그 역할을 해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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